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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22> 기업회생절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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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건설업 면허 1호’인 중견 건설업체 삼부토건이 법원에 냈던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 개시 신청이 지난달 28일 철회됐습니다. 신청한 지 두 달 반 만입니다. 삼부토건을 비롯해 올해 들어 LIG건설·동양건설산업 등 중견 건설사들이 잇따라 기업회생을 신청해 떠들썩했지요.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스스로 신청하고 철회하는 이유는 뭘까요? 자산 규모 총 16조원, 180여 개 기업의 회생 절차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지대운(53·사법연수원 13기)수석부장판사에게 기업회생절차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구희령 기자



재정 위기 기업 채무동결 조치

기업회생절차는 기본적으로 재정 파탄 상태에 있지만 아직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기업을 회생시키려는 제도입니다. 파산 상태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기한 내에 은행 채무 등을 갚으려면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대상입니다. 경제성이 있는 기업이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경우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 법원이 개입해 채권자 각자의 권리를 제한합니다. 빚 변제를 잠시 미뤄줘 기업에 숨 쉴 공간과 재기할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당장은 채권자의 권리가 제한되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경영이 개선되면 기업 가치가 올라갑니다. 이 경우 당장 파산 절차를 밟아 채권을 회수했을 때보다 채권자들은 더 많은 이득을 찾아갈 수 있게 됩니다.

기업회생절차는 법원이 맡아서 진행합니다. 이 점에서 채권단 주도로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과 자주 비교가 됩니다. 본질적으로 기업회생절차와 워크아웃은 재정 위기에 처한 기업에 대한 응급조치라는 점에서 목적이 같습니다. 특히 지난 5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2013년 12월31일까지 적용)이 새롭게 제정되면서 워크아웃과 기업회생절차의 차이는 더욱 줄었습니다.

과거에 워크아웃은 주채권은행이 신청하고, 기업회생절차는 해당 기업이 신청한다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 기촉법에 따라 주채권은행이 부실징후기업에 관리절차 신청이 가능하다고 통보하면 기업이 스스로 워크아웃 신청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경우 채권은행협의회의 의결을 거쳐 신청하면 됩니다.

물론 차이점도 있습니다. 워크아웃은 금융권 채무만 동결합니다. 워크아웃 기업과 상거래 관계에 있는 하도급 업체 등 일반 기업에 진 채무는 갚아야 합니다. 반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은 모든 채무가 동결됩니다. 채무 변제 기간도 큰 차이가 나는데요, 대개 워크아웃은 개선작업 이행기간 1년을 기본으로 채권금융기관협의회의 의결에 따라 연장해 나가는 반면 기업회생절차는 10년 이내로 정해져 있습니다. 워크아웃에 비해 기업회생절차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었습니다만 지난 4월부터 회생 계획 인가 후 기업이 돈을 갚기 시작하면 절차를 조기종결하는 ‘패스트 트랙’ 방식을 법원이 도입하면서 6개월 내에 절차를 끝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법원 파산부는 기업 응급실

기업회생절차는 법원의 파산부에서 담당합니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기업회생사건은 파산수석부장판사와 지법 부장판사(2명), 경력 10년 내외의 지법 판사(10명)가 맡고 있습니다. 자산규모 100억원이 넘는 등 중요한 사건의 경우는 수석부장판사가 재판장, 지법 부장판사가 주심을 맡습니다. 현재는 판사 1인당 17~18개의 사건을 맡고 있지요.

법원 파산부는 민·형사 재판부와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기업이나 경영진의 잘못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기업을 살리는 응급실 역할이지요. 재정 위기에 처한 기업에 회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의사 말을 듣지 않고 하루에 담배를 두 갑씩 피웠다가 폐암에 걸린 환자라고 해서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단 살리고 회복시켜서 내보내야 하지요. 법원 파산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영진의 책임은 민·형사 법정에서 묻고 파산부는 일단 사회적 생명체인 기업부터 살려놓는 것입니다. 환자가 병이 가벼울 때 병원을 오면 빨리 낫듯이 기업도 재정 상태가 완전히 파탄되기 전에 법원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까지는 기업회생절차 신청을 끝까지 미루다가 더 이상 손 쓸 수 없을 때에야 법원을 찾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워크아웃에 실패한 뒤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다 보니 회생률도 낮아져 워크아웃은 좋은 절차, 기업회생절차는 가능한 피해야 할 절차라는 편견도 생겼습니다.

최근 LIG 건설 등 여력이 있는 기업이 법원 파산부를 찾아왔습니다. 이런 경우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기업이 회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2006년부터 기존 경영진이 ‘관리인’으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 회사 대표 역할을 할 ‘관리인’이 선임됩니다. 법원이 채권단과 협의해서 결정한 기업회생계획을 이행하도록 기업을 관리하는 사람, 즉 새로운 경영진입니다. 기존 경영자가 부실 경영 책임이 크거나 횡령·배임을 한 경우는 반드시 제3자가 관리인이 됩니다. 2006년 통합도산법 발효 이전에는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제3자 관리인’이 선임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리 등 큰 문제가 없는 경우에는 기존 경영진이 관리인을 맡아 경영을 계속해 나갑니다.

이렇게 법을 바꾼 이유는 경영권을 뺏길까봐 기존 경영진이 마지막까지 법정관리 신청을 안하고 버티다가 기업이 붕괴되는 폐해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또 기존 경영진이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아이를 부모가 간병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전문 간병인이 맡는 게 좋을까요. 부모가 아이가 병이 나도록 방치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모가 간병을 맡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요. 아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미국에서는 1978년부터 관리인을 따로 선임하지 않고 기업 경영진이 그대로 재산관리처분권을 행사하는 ‘DIP(Debtor in Possession·기존 관리인 유지)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명운이 오락가락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경영자를 교체하기보다는 회사 상황을 잘 아는 기존 경영진이 사업을 계속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회생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숱한 시행 착오를 겪으며 얻은 결론이라고 합니다.

우리 법원도 회생 개시 결정을 빨리 하려 할 경우에 미국처럼 관리인을 아예 선임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 경우 주주총회 결의로 선임된 대표이사가 경영권을 갖게 됩니다. 기존 경영자라고 해도 대주주가 된 채권단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경영권을 박탈당할 수 있지요.

사실 통합도산법이 기업회생절차가 끝난 후에도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회생과정에서 빚을 현금으로 갚지 못하고 대신 주식을 제공하는 출자 전환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법에 따라 채무 초과 상태인 기업은 기존 주주의 주식을 반 이상 소각해야 합니다. 특히 주주가 부실 경영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경우는 3분의 2 이상을 소각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고 해서 법원이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신청이 접수되면 채무를 동결하고 법원의 허가 없이 기업 자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하는 보전처분,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릴지 여부를 7일 이내에 결정합니다. 또 한 달 이내에 기업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정합니다. ▶회생절차 비용을 내지 못하거나 ▶당장 파산 절차를 밟아 채무를 정리하는 것이 회생 절차를 밟는 것보다 나은 경우 ▶수표가 부도가 나서 처벌받지 않으려는 목적만으로 신청한 경우 등은 기각합니다. 기각과 동시에 채무 동결과 재산 보전 조치는 무효화됩니다.

기각 후에도 기업회생절차를 다시 신청할 수 있지만 이때는 채권자 전체의 의견을 묻고 난 뒤 채무 동결 조치를 취하는 등 엄격하게 제한합니다. 심사 단계에서 삼부토건처럼 신청을 취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만 일단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지면 취하가 불가능합니다. 개시 이후에도 각 단계에서 파산 선고가 가능합니다.

기업회생절차 Q&A

기업회생 절차와 관련해 궁금한 것들을 지대운 수석부장판사(사진)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Q 최근 중견 건설사들이 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해 채무 동결 조치를 받은 것은 일종의 ‘위장 입원’ 아닌가요.

A 기업이 회생 절차에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경제적 커밍아웃’입니다. 신용도는 추락하고 기업 내부 상황이 샅샅이 공개됩니다. 채무가 동결되지만 지연 손해금도 결국 다 물어야 하고요. 그러니 정상적 영업활동이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지는 않겠지요.

Q 상거래 채무까지 동결되기 때문에 영세한 거래업체들이 휘청거리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는데요.

A 채무를 동결해도 수백만원 정도의 소액 채권자는 변제 받을 수 있습니다. 건설 현장 임시식당(함바집) 아주머니가 임금을 못 받게 되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또 다소 금액이 큰 경우라도 대금을 못 받아 도산위기에 처했다는 상황 등을 법원에 제출하면 우선 변제도 가능합니다.

Q 6개월 내 절차가 종결되는 ‘패스트 트랙’의 적용 조건은 무엇인가요.

A 금융기관 신용공여액이 500억원 이상이고 기업과 채권단 간에 기업회생 절차 신청 전에 회생계획안 등에 대해 사전합의가 된 기업이 대상입니다. 하지만 이 요건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우 사실상 패스트 트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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