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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사러 수퍼 온 손님, 옷 사고 적금도 들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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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영국 광역런던주 중부에 위치한 테스코 수퍼스토어 전경. 차를 몰고 외곽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도록 주택가에 위치했다. 1600㎡의 매장에는 주 고객인 주부들을 겨냥해 5000여 종의 상품을 갖췄다.


지난달 30일 영국 런던 외곽 스테인스 지역에 위치한 ‘테스코 홈플러스’ 매장. 3만2000여㎡ 규모의 이곳에서 눈길을 끈 것은 의류 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피팅룸이었다. 재키 제프리 점장은 “손님들이 기다리지 않고 옷을 입어볼 수 있게 피팅룸을 5개나 마련했다. 그만큼 의류 코너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600여㎡ 면적에 꾸며진 의류 코너 역시 남성복·여성복·아동복·속옷·액세서리 등이 카테고리별로 분류돼 있다. 자라·유니클로처럼 깔끔한 패스트패션 브랜드 매장처럼 보였다. 의류 코너 반대편에 자리한 가구 코너 역시 이 매장의 강점으로 꼽히는 곳. 실제 침실과 주방·거실처럼 공간을 꾸며 침대와 식탁·소파 등을 진열해 놓았다. 마치 백화점의 가구 매장에 와 있는 듯했다.

 이곳은 세계 3위 유통업체인 영국 테스코그룹이 운영하는 비식품 전문 할인점이다. 반찬거리가 아니라 의류·인테리어용품 같은 생활용품을 사려는 사람들을 주고객층으로 삼아 지난해 처음 문을 열었다. 이름은 한국법인 ‘홈플러스’에서 따왔다.


 홈플러스 스테인스 매장은 성숙기에 접어든 영국 유통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테스코그룹의 전략을 잘 보여준다. 고객의 수요를 세분화해 이에 맞춰 점포 형태를 분화한 것이다.

 소형 수퍼인 엑스트라의 경우 도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간단한 먹을거리와 사무용품 등을 살 수 있도록 점포 크기는 줄이는 대신 매장 수는 늘렸다. 서울 시내엔 커피전문점이 골목마다 있다면, 런던 시내엔 익스프레스 점포가 그 정도로 많다. 반면 수퍼스토어는 주부들이 차를 몰고 외곽까지 나가지 않고도 쇼핑할 수 있도록 주택가와 가깝다. 메트로는 이 두 점포의 성격을 혼합했고 편의점 형태의 원스톱은 구비 상품을 줄이는 대신 세금 수납 대행 같은 서비스를 추가했다.

 영국 유통업계의 또 다른 트렌드는 기존의 사업 영역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한꺼번에 판매하는 복합매장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른바 ‘크로스오버 매장’이다.

 이런 흐름을 잘 반영한 곳 중 하나가 런던 시내 리젠트 거리에 위치한 ‘M&S 푸드홀’이다. 의류업체 막스앤드스펜서(Marks&Spencer)가 운영하는 중형 수퍼로, 남성복·여성복·미용용품 매장이 층마다 위치한 3층짜리 건물 지하에 있다. 의류 매장과 함께 있는 만큼 M&S 수퍼는 식품 부문을 강화했다. 간단한 음식을 주문해 바로 먹을 수 있는 작은 푸드코트를 따로 뒀다. 지난달 29일 매장에서 만난 샘 웰든(36)은 “혼자 살고 있어 퇴근길에 이곳에 들러 간단히 저녁을 먹고 생필품이나 옷가지를 사 간다”고 말했다. 푸드홀보다 규모가 작은 소형 수퍼 ‘M&S 심플리푸드’ 매장도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테스코그룹 역시 크로스오버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2008년 현지 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The Royal Bank of Scotland)를 인수한 뒤 수퍼 매장에서 예·적금 상품과 자동차·생명보험 등을 팔고 있다. 또 2003년부터는 통신회사인 오투(O2)와 합작해 휴대전화 통신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테스코그룹 루시 네빌롤프 대외업무 총괄 부회장은 “이미 포화상태가 된 영국 유통업계에선 점포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한 매장에서 ‘원스톱(One stop)’으로 얻을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다 보니 반찬거리를 사러 수퍼에 왔다가 옷도 사고 적금도 들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런던=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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