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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유대인 악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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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러시아 유대인의 애환을 그린 명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엔 유대인 악사가 수시로 등장한다. 가난한 벽촌에 바이올린 악사가 영 어색할 수 있지만 유대인의 전통을 알면 쉬 납득이 된다. 유대교 예배 전체가 노래라 할 만큼 이들에게 음악은 숭고한 종교 의식 자체다.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레위 지파는 오로지 음악만을 맡을 정도였다. 지금도 유대교엔 수년간 특별교육을 받고 노래로 예배를 인도하는 ‘하잔(Hazzan)’이란 음악 목회자가 따로 있다. 러시아 출신 유대인 화가 마르크 샤갈의 몽환적 그림 속에 바이올린 악사가 자주 나오는 것도 그런 연유다.

 이런 배경에다 타고난 근면함으로 유대인 음악가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다니엘 바렌보임, 아이작 스턴, 예후디 메뉴인, 이츠하크 펄먼, 미샤 마이스키 등 기라성 같은 연주가들이 무수히 많다.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정상급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선 주최국 러시아가 최다 입상자를 냈지만 실은 다수가 유대계다. 1948·52년 두 대회의 러시아 수상자 25명 중 14명에게 유대인 피가 흘렀다.

 이 같은 성취 뒤엔 유대인의 유난한 교육열 덕이 컸다. 1950·60년대 미국에선 ‘유대인 엄마(Jewish Mom)’란 말이 유행했다. 공부하라고 노상 잔소리하면서 심하게 과외시키는 엄마를 뜻했다. 저명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이 무렵 유대인 128명과의 인터뷰 끝에 유대인 엄마의 특징을 도출해낸다. “늘 잔소리를 하면서 가족들을 통제하려 하고, 한없는 자기 희생을 통해 자식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줌으로써, 본인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영락없는 한국의 억척 엄마다.

 그러나 교육열만이 전부는 아니다. 유대인 특유의 단결도 한몫을 했다. ‘유대인 마피아’로 불릴 만큼 서로 밀고 당기며 도왔다. 특히 유대인 마피아의 대부라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턴은 곳곳에서 젊은 동족 연주가들을 발굴했다. 이렇게 발탁된 게 현란한 기교의 핀커스 주커만이다. 스턴은 또 이스라엘에 전쟁이 날 때마다 달려가 자선 연주회를 여는 동족애도 발휘한다.

 이번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선 한국 연주가 5명이 상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세계 최고라는 교육열에다 토종 영재교육의 덕분일 터다. 하나 음악계에 불기 시작한 ‘코리안 키드’ 돌풍이 유대인 벽을 넘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유대인 음악가 사이에서 빛나던 상부상조의 미덕이 아직은 잘 보이지 않는 탓이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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