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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기자 VS 이 부장 ┃ ④ 냉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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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냉면은 한여름 국민 음식이다. 원래는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다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여름만 돌아오면 냉면부터 찾는다. 그러나 냉면을 찾는 입맛은 성별·세대별로 크게 다르다. 50대 중년 남성의 입맛을 대표하는 이 부장은 구수한 메밀면과 육수의 깊은 맛이 어우러진 평양냉면에서 냉면 맛의 원점을 찾고, 20대 여성의 입맛을 주장하는 윤 기자는 평양냉면은 밍밍해서 못 먹겠다고 투덜댄다. 이름하여 냉면 배틀이 벌어진 것이다.

사진=김성룡 기자

구수한 메밀면에 깊은 육수맛…평양냉면 찾아 6시간 길도 간다네

# 이 부장 “자네가 냉면의 깊은 맛을 아는가?”

서울시내 평양냉면 ‘사대천왕’ 중 한 곳인 ‘필동면옥’의 물냉면. 깔끔한 육수와 구수한 메밀면이 어우러진 평양냉면에 시원한 무김치도 빼놓을 수 없다.



나도 나름 냉면 애호가라네. 담배는 쉬 끊었지만 냉면은 자신 없어. 냉면만을 위해 왕복 6시간 넘는 길도 마다하지 않지. 하지만 냉면 얘기라면 우리는 접점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내가 냉면 편식이 아주 심하거든. 내가 생각하는 냉면은, 고기를 주재료로 만든 국물에 메밀을 주성분으로 뽑은 국수를 만 음식이야. 물냉면이지. 흔히 평양냉면이라고 하는 거야. 국수는 메밀 함량이 많을수록 좋고(80%부터가 진짜라던가), 육수는 맹물처럼 맑은 쪽을 선호하지. 백 번에 아흔아홉 번은 그런 냉면을 먹을 거야.

 시원하면서 육향이 그윽해 입안의 모든 맛 세포를 깨우는 육수와 구수하고 깊은 메밀향을 품은 국수의 어울림을 즐기는 거지. 내 취향의 정서적 비중은 메밀 면 51 대 육수 49라네.

 이런 냉면에 대해 젊은이는 대체로 “에이, 이게 무슨 맛이야” 하거나 “맛이 너무 밍밍해. 이런 걸 왜 먹지” 하고 반응하더군. 탓할 일이 아니라고 보네. 나도 젊어서는 비슷했으니까. 처음엔 그렇지만 그 속에 깊은 맛이 있으니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생각도 없네. 좋은 메밀은 귀하고 냉면 좋아하는 국민은 너무 많아 냉면 한 그릇에 1만~1만1000원이나 하는데 수요를 굳이 늘릴 이유가 없지 않겠나. 다만, 세월이 그 맛의 진경을 일깨워줄 거라는 말은 해두고 싶네.

강원도 철원 ‘평남면옥’의 냉면은 꿩육수로 유명하다.

 정통 메밀냉면에 입문한 지 올해로 37년째. 참 열심히 냉면을 먹으러 쫓아다녔지만 나는 어느 집 냉면이 최고라고 얘기하지 않는다네. 냉면 입맛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지. 대한민국에서 라면을 가장 맛있게 끓이는 방법은 인구 수만큼이라는 말이 있지. 냉면도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내 입엔 어느 집 냉면이 좋더라”라고 말하지.

 물냉면 맛의 원점은 어디일까. 평양 옥류관을 꼽는 사람이 많아. 내로라하는 서울 냉면집의 본적지 평양에서도 대표 냉면집이기 때문이지. 평양에 다녀온 냉면 애호가들은 “어느 집이 옥류관 맛과 비슷하다”라는 말들을 종종 해.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음식점 현지지도를 많이 했다네. 옥류관에도 1988년 식재료 공급 대책을 마련해줬다고 해. 공급기지로 평양시 상원군을 지정했다는 거야. 녹두·메밀·참깨·고추 등 재료가 잘 공급되도록 한 거지. 김정일 위원장도 현지지도를 한다는 뉴스가 가끔 보이더군. 냉면 먹기 전 식초를 어떻게 쳐야 하는지까지 교시를 했다는 거야.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어떤 법보다 앞서지. 대물림 최고통치자들이 이렇게 틀을 정해주니 맛이 일정하지 않을까. 그래서 옥류관을 평양냉면 맛의 원형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 내가 북한에 가보고 싶다면 그 이유의 절반 이상이 옥류관 냉면이라네.

 평양엔 당분간 못 갈 테니 비슷한 맛을 찾아 떠돈다네. 내 소년기에 정통 냉면 첫발을 뗀 대전 사리원면옥(대흥동 042-256-6506, 둔산동 042-487-4209), 평양 제3중학 동창회 달력이 방에 걸려 있던 동두천 평남면옥(031-865-2413), 꿩 육수로 유명한 철원 평남면옥(033-458-2044), 왕복 6시간이 걸려도 길을 나서는 풍기 서부냉면(054-636-2457), 백령도의 필수코스 사곳냉면(032-836-0559), 메밀면·전분면을 함께 내는 대구 대동면옥(053-255-4450)이 그런 집들이네. 주중에는 서울의 이른바 ‘사대천왕(평양면옥·필동면옥·을지면옥·우래옥)’과 그 일가의 집에 다니지. 나는 지난 열흘간 다섯 끼는 냉면을 먹었다네. 

이택희 피플위크앤 데스크

이 부장이 자주 다니는 냉면집

의정부 평양면옥(031-877-2282)과 그 형제들. 서울 필동면옥(02-2266-2611), 입정동 을지면옥(02-2266-7052), 잠원동 본가평양면옥(02-547-6947), ● 서울 평양면옥(장충동 02-2267-7784, 논현동 02-549-5378), ● 서울 우래옥(주교동 본점 02-2265-0151, 대치동 강남점 02-561-6121)

밍밍한 물냉면이 뭐가 좋다고 … 중국·일본식 비빔냉면 어때요

# 윤 기자 “여름엔 쨍한 맛이 최고 아니에요?”

서울 신라호텔 ‘팔선’의 중국냉면은 양지머리와 토종닭을 6시간 동안 우린 진한 육수로 유명하다. 이 육수에 고소한 맛을 더하는 땅콩소스는 필수다.



부장! 역시 의정부 ‘평양면옥’을 추천하셨군요. 그럴 줄 알았어요. 이 집은 저희 가족의 오랜 단골집이기도 해요. 저희 부모님이 신혼시절부터 다니셨다니 정말 골수 단골이지요. 부장뿐 아니라 저희 어머니도 ‘평양면옥’의 진미는 물냉면이라고 하시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이 집 물냉면보다는 비빔냉면이나 만둣국을 좋아했어요. 솔직히 아직도 그 집 물냉면 육수의 색다른 깊은 맛을 잘 모르겠어요. 밍밍하다 싶을 만큼 순해서 국수를 건져 먹고 나면 은근히 본전 생각이 날 때도 있다니까요. 차라리 집에서 물김치에 소면 말아먹는 게 낫지 싶기도 하고요. 그에 비하면 비빔냉면은 양념이 조금 야박한 듯하지만, 적당히 자극적인 맛이 기분을 상쾌하게 하죠.

 그런데 말이에요. 냉면 하면 평양냉면·함흥냉면만 메뉴로 올리는 것이 저는 이해가 안 돼요. 냉면(冷麵)의 사전적 의미는 ‘차게 해서 먹는 국수’잖아요. 평양냉면·함흥냉면만 ‘냉면’이 아니라는 거죠. 요즘 젊은이는 색다르고 풍부한 맛의 ‘해외 냉면’으로 더위를 식힌답니다.

 제일 먼저 진한 육수에 땅콩소스를 넣은 중국 냉면을 들 수 있어요. 면 요리의 탄생지답게 중국은 지방마다 차가운 면 요리가 다양하지요. 그중에서 ‘간반몐(乾拌麵)’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어요. 원조 ‘간반몐’은 꼬들꼬들하게 익힌 가는 면에 화조(산초의 일종)를 더한 땅콩소스·고추기름·오이·파 등을 넣고 비벼먹는 거예요. 이것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육수를 더해 텁텁한 맛을 줄인 게 한국식 중국 냉면이고요. 땅콩소스와 육수의 만남이 전혀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답니다. 저는 늘 땅콩소스를 한두 숟가락 더 넣어서 먹어요.

 ‘간반몐’은 일본식 냉면의 모태가 되기도 했어요. ‘히야시추카(冷やし中華)’라는 냉라멘이 있는데 ‘히야시’는 차갑다는 뜻이고 추카는 중화(中華), 즉 중국을 의미하는 동시에 라멘을 뜻하는 ‘주카(추카)소바’의 준말이죠. 육수를 더한 한국식 중국 냉면과 달리 ‘히야시추카’는 오리지널에 충실해요. 차가운 면에 소스를 넣고 오이·자슈(일본식 돼지고기 수육)·달걀지단 등을 올려 함께 비벼 먹어요. 우리 비빔냉면보다 조금 더 짭조름한데 생맥주가 절로 생각나는 맛이랍니다.

 ‘분차(Bun-Cha)’라는 베트남식 냉면도 있어요. 버미셀리라는 가느다란 쌀국수를 각종 채소·돼지고기 목살구이와 함께 차가운 피시소스에 찍어먹는 하노이 전통음식이에요. 모양은 양념갈빗살구이를 냉면에 싸서 먹는 ‘갈냉쌈’과 비슷한데 맛이 훨씬 자극적이에요. 야들야들한 쌀국수와 짭조름한 돼지고기 목살구이, 차고 새콤한 피시소스의 조화가 처음엔 생소할지 몰라도 먹을수록 은근히 매력이 있어요.

‘라그릴리아’의 아스파라거스 카펠리니 냉파스타.

 냉면요리라면 냉파스타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사실 이탈리아 본토에는 차가운 파스타가 없다고 하네요. 이탈리아에서 먹는 건 엄밀히 말하면 ‘파스타를 넣은 샐러드’래요. 국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는 각종 냉파스타는 한국식으로 재탄생된 요리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오리지널 파스타 샐러드의 가벼운 맛은 살리면서 파스타의 양을 늘린 냉파스타는 차가운 면 요리를 즐기는 한국인한테 잘 맞는 퓨전 요리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시원한 화이트와인을 곁들이면 금상첨화겠죠.

 부장이 추천하신 평양냉면과 비교하면 제가 즐기는 ‘해외 냉면’은 다 자극적인 편이에요. 하지만, 무더위에 지친 기운과 입맛을 돋우는 데는 평범치 않은 쨍한 맛이 그만 아닐까요? 어떠세요. 올여름엔 새로운 도전에 나서보시는 게.

윤서현 기자

‘해외 냉면’ 맛볼 수 있는 곳

팔선(서울 신라호텔, 02-2230-3366)=중국냉면 2만원(세금·봉사료 별도), ● 미타니야(서울 용산전자상가 전자월드빌딩 지하 1층, 02-701-0004)=히야시추카 1만원, ● 인엑스하우징 땅(서울 역삼동, 02-554-0707)=분차(스몰) 2만5000원(세금 별도), ● 라그릴리아(서울 코엑스 밀레니엄 광장, 02-553-9192)=아스파라거스 카펠리니 냉 파스타 2만1000원(세금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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