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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체벌 항의하는 부모들, 학원서 체벌하면 “교육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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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교권 추락 사태와 체벌 전면금지 논란에 이어 ‘반값 등록금’ 문제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교육 현장이 흔들리는 가운데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교육계 내에서도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되고 있다.

전국 40만 명의 교원 중 18만여 명을 회원으로 둔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안양옥(53·사진) 회장에게 교육계 현안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교총에는 유치원 교사부터 대학교수까지 교육자들이 두루 가입돼 있다. 안 회장은 다음 달 7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인터뷰는 23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영등포구의 하이서울유스호스텔회의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최근 울산에서 고교생이 교사를 때려 중상을 입히는 등 교권 추락 현상이 심각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학원강사가 학생을 체벌하면 부모들은 교육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교사가 학생을 때리고 나무라면 ‘왜 우리 아이를 혼내느냐’며 항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교육청에 진정을 내기도 한다. 이게 지금 사회 분위기다. 사제 간의 정서적 유대관계는 사라지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지식 전달만이 우선시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학생들도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물론 욕을 하거나 심지어 폭력까지 휘두른다. 과거 고교에 주로 국한됐던 상황이 지금은 중학교를 넘어 초등학교까지 급속히 퍼지고 있다. 현장 얘기를 들어보면 교사들 상당수가 문제 학생이 있어도 못 본 척 지나가버린다고 한다. 과거에 교사들이 너무 권위주의적이었다는 문제는 있다. 하지만 사회화 기능을 수행하는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강제적인 권위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신세대 부모들은 인권이나 평등을 우선시한다. 교사와 학생 관계도 인권·평등에 근거해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초·중·고 현장 경험이 거의 없는 진보교육감들이 자신들의 이념과 가치에만 기초해 체벌금지, 학생인권 조례 등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탓도 크다. 정부 지원도 학부모·학생에게만 치우치고 있다. 교사는 어디에서도 배제돼 있으니 권위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가게 된다.”

-서울과 경기도 지역 학교에선 체벌금지로 인한 교사들의 고충 호소가 많다. 최근 경기교육청에서는 학생에게 5초간 엎드려뻗쳐를 시킨 교사를 체벌금지 위반으로 징계해 논란이 됐다. 체벌전면금지는 바람직한가.
“영국에서는 최근 체벌을 해서라도 아이들을 교육해달라는 시위가 있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문제 학생을 교장실로 데려가면 교장이 학생과 상담한 뒤 상호 이해하에 훈육봉으로 체벌을 가한다. 어느 나라나 교육과 체벌은 상관관계가 크다. 사실 교육은 신체적 접촉에서 시작한다. 체벌(體罰)과 체상(體賞)이 있다. 체상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는 것이다. 체벌은 때리는 것이다. 무엇을 택하느냐에 따라 교육 방법적으로 길이 극단적으로 갈린다. 중간이 간접체벌이다. 과거 같은 감정적 체벌은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상징적 권위로서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교육 방법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간접체벌은 허용해야 된다는 것이다. 교총에선 현재 효과적인 체벌대체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교과부에서도 허용한 간접체벌을 사유로 교사를 징계한 것은 잘못이다. 과도한 권력 행사다.”

-8월 서울에선 전면무상급식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된다. 교총은 전면 무상급식을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단계적 접근도 없이 대도시 학교까지 무리하게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학교 시설비 감축 등 교육 예산이 균형을 잃게 된다. 지금 농어촌 학교와 도시 학교를 비교하면 도시 학교의 시설 개선이나 교육의 질 향상이 더 시급하다. 학생들이 쾌적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시설 개선이 필요하고 충실한 교육자료 개발이 절실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육 관련 재정을 무상급식에 투입한다면 교육 현장이 어떻게 되겠나. 전면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다. 저소득층 자녀들 위주로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확대하면서 우선 시급한 시설 향상, 교사 질 개선과 사기 진작 등에 재원을 써야 한다.”

-‘반값 등록금’이 뜨거운 이슈다. 반값 등록금이 가능하고 바람직한가.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등록금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반값’이라는 용어는 아쉽다. ‘등록금 정상화’나 ‘올바른 등록금’ 같은 용어를 써야 했다. 반값은 비현실적이다. 이는 누구나 원하면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한다는 평등주의 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정작 중요한 대학 경쟁력은 도외시돼 있다. 복지 논쟁에 교육이 휘말려 있는 셈이다. 반값 등록금 문제가 정치 구호성으로 가면 안 된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인 우리의 등록금을 낮춰야 한다는 총론에는 찬성이다. 하지만 서둘러 추진하면 안 된다. 대학과 학부모, 학생들의 동의를 구하면서 등록금을 점진적으로 낮추기 위한 계획을 짜야 한다. 대학들도 재정 운영의 개혁은 물론 교육의 질 향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커리큘럼을 대폭 개선하고 교수 방식도 바꿔야 한다.”

-6명의 진보교육감이 등장한 지 1년이 됐다. 그동안 교육 현장엔 갈등도 많고 혼란도 적지 않았다. 이들의 1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과거 교육감은 교육부의 지시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측면이 강했다. 우리 교육 현장 시스템은 일본·독일 등 선진국의 장점을 다 끌어모아서 매우 효율적인 체계를 구축했다. 그런데 효율적이지만 창의적이지 못한 단점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과는 다른 신념과 이념을 가진 진보교육감이 대거 등장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교수 출신이 많아 대부분 초·중·고 교육 현장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장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이들이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는 실험장으로 학교를 만들고 있다. 너무 급진적이고 이상적이며 관념적이다. 여기에 거의 견제받지 않는 막강한 교육감 권력을 쥐고 있으니 학교 현장의 혼란이 심각해졌다. 앞으로는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서로 토론하고 상생하는 통섭의 시대로 가야 한다. 진보교육감들도 다양한 지적을 수렴하고 정책적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 또 정부·교육감·교원단체가 모여 교육 문제를 토론하고 해법을 찾는 교육분쟁조정위원회 같은 조직의 구성이 필요하다.”

-교총은 진보교육감이나 전교조와는 많이 대립했지만 정부에는 너무 우호적이어서 ‘교과부 2중대’라는 비판도 있다.
“그런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사안에 따라서는 과거 그런 비판을 들을 만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교육 정상화 과정에서 교총의 역할이 컸다. 공로를 인정해주고 비판할 점은 비판해달라.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할 것은 하고 도울 것은 도우려 한다. 진보교육감들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겠다.”

-현 정부는 공교육 강화를 통한 사교육 줄이기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그 효과를 느끼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교육의 개념을 잘못 대비시켜서 그렇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다. 학교는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지식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그것만 하려면 학원만 다니면 된다. 공교육은 사교육과 달리 전인교육이 목표다. 사교육과 비교해 공교육 강화를 말한 것은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무조건 경쟁시키는 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방과후 학교를 학원에서 와서 운영하는 오류까지 벌어진다. 방과후 학교는 부족한 학력을 메우는 게 아니라 전인교육으로 가야 한다.

공교육을 제대로 살리려면 무엇보다 지금의 입시제도를 바꿔야 한다. 수능시험 개혁이 필요하다. 학교수업을 충실히 받으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도록 입시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는 수능시험과 학교수업이 겉돌고 있어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리고 있다. 입학사정관처럼 점수보다는 가능성을 우선해 학생을 선발하는 방안들이 적극 추진돼야 한다.”

-내년부터 초·중·고에 주5일제 수업이 전면 시행된다. 교총도 이를 강력히 주장해왔다. 사회여건상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다.
“사회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학생들에게 새로운 창의력을 가지도록 해줘야 한다. 교실 안에서는 사실 암기만 해도 된다. 교실 밖에서 여러 장을 통해 창의력을 해결해야 한다. 학교 안에서만 하려고 하니까 안 된다. 다양화 시대에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주말을 활용하기 위한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사가 솔선수범해서 학생들을 데리고 나가야 한다.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13만여 명의 소위 ‘나 홀로 학생’에 대한 대책은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는.
“교사의 전문성 강화에 역점을 두겠다. 또 교과부의 정책에 대한 조언과 비판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권위주의가 아니라 진정하게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교권 회복의 터전 마련도 필요하다. 또 한 가지 교원의 정치 참여를 강화하겠다. 한국 사회는 정치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정치가 학교교육을 도구화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온전한 학교로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강력히 저항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교원들의 정치 참여 터전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이를 위한 모든 가능한 활동을 펼 생각이다.”

강갑생 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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