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 보관한 탯줄·태반, 난치병 치유의 ‘동아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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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혈 보관 기업 직원이 제대혈 키트를 영하 200도의 액체질소 탱크에 넣기 전 모습. [보령바이오파마 제공]


탯줄은 새 생명의 연결고리다. 10개월간 엄마의 영양분을 태아에게 공급한다. 출산 후 버려졌던 탯줄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탯줄에 있는 피, ‘제대혈’에 질병 치료의 열쇠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백혈병·재생불량성 빈혈 같은 난치병 치료에 이용한다. 뇌성마비·소아당뇨병·파킨슨병 등 많은 질병 치료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오는 7월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제대혈을 엄격하게 관리해 사용하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중앙일보는 제대혈 보관 전문기업 보령바이오파마와 ‘생명의 보고, 제대혈’ 기사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첫 번째 주제는 ‘난치병 극복 열쇠, 제대혈’이다.

#1. 2006년 태어난 최모(충북 청주)군은 이듬해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출생하면서 제대혈을 보관해 자가(본인)제대혈 이식으로 치료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가제대혈 이식을 할 수 없는 연소형골수단구성백혈병이었다.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증세가 나아지지 않아 2008년 1월 다른 사람의 제대혈을 구입해 이식받았다. 그러나 거부반응이 나타났고 병세가 악화됐다. 골수이식도 있지만 최군의 조직과 100% 일치하는 골수를 찾는 건 힘들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같은 해 3월 자가제대혈을 이식받았다. 주치의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정낙균 교수는 “운이 좋았다. 현재 백혈구과 혈소판이 정상 수치로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군은 약 1년 뒤에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완치판정을 받는다.

#2. 2010년 봄. 대구시에 사는 박모(7)양은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량이 많아져 병원을 찾았다. 췌장세포가 망가져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소아당뇨병이었다. 이 병은 평생 인슐린을 투여하는 것 이외에 손쓸 방법이 없다. 박양은 인슐린 투여 중 폐렴이 왔고 인슐린 조절이 힘들어졌다. 세균에 감염되고 당뇨병성 혼수상태에 빠지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상황. 결국 태어나면서 보관한 자가제대혈을 이식받기로 했다. 소아당뇨병 환자의 제대혈이식은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인 분야다. 박양은 소아당뇨병환자로선 국내 처음으로 올해 2월 제대혈을 이식받았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영호 교수는 “현재 인슐린 투여량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제대혈의 효과인지 다른 영향인지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혈병 완치율 60% … 유방암·폐암도 치료

탯줄과 태반에는 평균 100mL의 제대혈이 있다. 이영호 교수는 “제대혈에는 조혈줄기세포와 중간엽줄기세포가 있다. 이 두 줄기세포를 치료에 이용하는 게 제대혈 이식”이라고 설명했다. 조혈줄기세포는 피를 만드는 일꾼이다. 혈액 속의 적혈구·백혈구·혈소판을 생산한다. 중간엽줄기세포는 근육·혈관·연골·신경 같은 조직을 구성한다.

 이미 20여 년 전 제대혈의 조혈줄기세포를 활용한 난치병 치료가 시작됐다. 현재 제대혈 이식으로 치료하는 병은 골수가 망가져 생기는 백혈병과 재생불량성 빈혈 등이다. 낡은 세포가 골수·간 등에 축적돼 문제를 일으키는 고셰병 같은 선천성 대사이상에도 이용한다. 골수는 뼈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부드러운 조직이다. 골수에 문제가 생기면 백혈구·적혈구·혈소판이 안 만들어진다.

 골수를 제거하고 제대혈을 이식하면 제대혈이 안착해 혈액세포를 만드는 게 치료 원리다. 이영호 교수는 “ 백혈병 완치율은 약 60%”라고 말했다.

 미국·유럽에선 제대혈을 성인의 유방암·폐암·난소암에 2차 치료제로 쓴다. 루푸스 같은 류머티즘질환에도 적용한다.

 제대혈 중간엽줄기세포의 치료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도 한창이다. 국내외에서 뇌성마비·발달장애·심근경색·신경계질환·척추손상·파킨슨병·알츠하이머병·뇌졸중·관절염 같은 질환에서 제대혈의 치료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박양이 앓고 있는 소아당뇨병도 포함된다. 연구는 중간엽줄기세포가 망가진 조직에 가서 분화한다는 이론에 근거한다. 버거병처럼 혈관이 손상된 병은 혈관을 새롭게 만들어 주는 식이다.

 제대혈 연구가 활발한 것은 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채취가 쉽고, 필요 시 즉시 이식치료가 가능하다. 보령바이오파마 김성구(의학박사) 본부장은 “골수이식은 조직적합성 항원이 100% 일치해야 가능하고 확률도 1만 명에 1명꼴”이라며 “하지만 제대혈은 조직적합성 항원이 50%만 일치해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대혈의 조직적합성은 부모와 50% 형제간에는 25~75%다.

 제대혈 이식의 단점은 완치율이 골수이식보다는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다. 정낙균 교수는 “치료에 작용하는 세포 수가 적어서 골수이식의 백혈병 완치율인 80~90%보다 낮다. 골수에 자리를 잡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대혈 이식 수는 점차 늘고 있다. 최근까지 세계에서 약 1만2000여 건의 제대혈이 이식됐다. 국내에서도 700건 이상 진행됐다. 이웃인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10배 많다.

 제대혈 활성화는 보관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성구 본부장은 “영하 200도의 액체질소에서 보관하는 제대혈의 보관 기간은 이론적으로 반영구적”이라며 “현재까지 안전성 시험결과 23년간 보관된 제대혈도 이식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황운하 기자

◆제대혈=탯줄과 태반에 있는 피다. 구성 성분은 혈관에 있는 피와 같다. 피를 생산하는 조혈줄기세포와 근육·혈관·연골 같은 조직을 구성하는 중간엽줄시세포가 많다는 게 특징. 백혈병·재생불량성 빈혈 등 난치병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 현재 소아당뇨병·뇌성마비·심근경색·파킨슨병·척추손상·뇌졸중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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