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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우 등급 꼼수 표기, 더는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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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우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9일 1등급 도매시장 경락가는 ㎏당 1만1280원으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33% 떨어졌다. 지난해 말 발생한 구제역으로 11만4000마리가 살처분됐지만 그 전부터 사육 두수가 꾸준히 불어난 탓이다. 2009년 6월 한우는 260만 마리였지만 올 3월에는 273만 마리를 기록했다. 쇠고기 수입 증가도 한몫하고 있다. 올 1~4월 수입물량은 9만8277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늘었다.

 소비자들이 한우를 덜 찾는 데는 축산 당국의 과보호정책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웬만한 식당마다 1등급 한우만 사용한다고 써 붙여 놓고 있으나 품질은 소비자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축산농가 과보호정책의 산물이다. 1등급이라고 하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가장 높은 등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일종의 속임수다. 현재 한우 육질 표시는 5단계로 돼 있다. 문제는 이것이 1~5등급이 아니라는 점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주관하고 있는 5개 등급은 1++, 1+, 1, 2, 3등급으로 돼 있다. 일반 국민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1등급이 세 번째 등급인 것이다. 등급 분포도를 봐도 현재의 1등급은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달 출하된 한우는 1++등급 9.6%, 1+등급 23.3%, 1등급 31.1%, 2등급 25.1%, 3등급 10.3%였다. 1등급 이상이 전체의 약 65%인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이나 관련 단체들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이런 표시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마침내 다음 달부터 개선하겠다며 방침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게 또 미봉책(彌縫策)이다. 1등급 한우의 경우 지금까지는 ‘1등급’이라고만 표시하면 됐으나 하반기부터는 1++, 1+, 1, 2, 3 다섯 등급을 다 나열하고 1등급에 동그라미를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조금 개선되긴 했으나 떼밀려 내놓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부 정책은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쉬운 것을 일부러 어렵고 헷갈리게 만드는 정책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껏 이런 술수를 써왔고, 개선안을 낸다고 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그대로 놔두겠다는 발상이 놀랍다. 현행 등급제는 축산 당국이 축산농가들의 압력에 밀린 데다 이런 변형 등급이 한우 소비에 보탬이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4등급이나 5등급이라고 하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고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4·5등급을 2·3등급으로 ‘위장’하고 그걸로 구매나 소비를 유도한다면 부정직한 정부, 나쁜 정부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개선안이라는 것이 식육판매점에만 적용된다는 것도 문제다. 훨씬 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식당에서는 안 해도 그만이다. 실제는 3등급인데 1등급이라고 써 붙이는 식당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꼼수는 한우와 축산정책에 대한 신뢰만 더 떨어뜨릴 것이다. 한우 품질을 누구나 알 수 있게 1~5등급으로 표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