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Biz] 볼보건설기계 팻 올니 회장 … ‘집중·선택·융합으로 성공한 볼보 M&A’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볼보그룹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3년 만에 ‘볼보 데이(Volvo Day)’ 행사를 했다. 볼보 데이는 전 세계 고객과 기자를 모아 볼보의 성과와 비전을 설명하는 큰 행사다. 각국 취재진 100여 명이 초대됐다. 볼보그룹의 주요 사업부문은 트럭과 건설기계다. 경기를 많이 탈 수밖에 없다. 불황기에는 새로운 것을 지으려는 사업자가 없기 때문이다. 볼보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신흥국 중심으로 경기가 살아나면서 볼보도 ‘V자 반등’에 성공했다.

j 는 지난달 24일 스웨덴에서 볼보건설기계(Volvo CE)의 팻 올니(43) 회장을 만났다. 볼보건설기계는 지난 1분기에 매출 580억 크로나(약 10조원)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볼보 데이의 초점도 ‘기업의 성장’에 맞춰져 있었다. 공식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올니 회장은 한국에서 온 두 명의 기자만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볼보 관계자는 “5월 취임한 회장의 첫 공식 인터뷰다. 그만큼 한국을 중요시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붉은 얼굴에 수염을 기른 캐나다 국적의 올니 회장은 비교적 정확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전에 한국의 상황과 데이터를 미리 검토해 봤다고 한다.

에스킬스투나(스웨덴)=강인식 기자

1913년 스웨덴 최초의 트렉터


●한국 기업을 인수한 지 13년이 지났다. 성과에 대한 볼보의 평가는 어떤가.

 “삼성중공업 건설기계 인수는 볼보 인수합병(M&A)의 걸작이다. 굴착기는 전 세계 건설기계 시장의 35%를 차지한다. 삼성 인수로 볼보는 강력한 굴착기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아시아에서 ‘시장의 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인수의 가장 큰 소득이다. 삼성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 지금과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없었다.”

 볼보그룹은 1998년 삼성중공업 중장비 부문을 인수했다. 한국 입장에서 당시 M&A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대기업 계열사가 해외에 매각된 사례였다. 볼보는 이듬해인 99년 볼보 승용차 사업부문을 미국 포드에 팔았다. ‘볼보의 심장을 내다 팔았다’고들 했지만, 볼보는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볼보는 승용차를 판 돈으로 르노 트럭, 닛산 디젤, 링공, 잉거솔랜드 등 경쟁력 있는 건설기계·트럭 기업들을 사들였다. 승용차 매각 후 볼보는 매출이 99년 151억 달러에서 10년 만에 461억 달러(2008년 말 기준)로 3배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볼보 승용차는 이후 또 주인이 바뀌었다.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한 포드가 중국 지리차에 매각한 것이다. ‘자존심을 팔았다’는 비난은 ‘탁월한 M&A 전략으로 집중과 선택에 성공했다’는 칭찬으로 바뀌었다.

●공식 프레젠테이션에서 중국 시장을 많이 강조했다.

 “볼보코리아는 전 세계 굴착기 생산의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볼보가 어디서 생산하든 우리의 모든 노하우는 한국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생산거점의 의미를 넘어 많은 자녀(daughter)를 거느린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한다. 중국은 건설기계의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에서의 성공은 글로벌 경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 법인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법인은 ‘중국으로 가는 길’이다.”(볼보CE는 지난 1분기 중국시장에서 굴착기와 휠로더 시장 점유율 10.2%로 1위를 차지했다.)

●볼보그룹은 M&A의 모범 사례를 만들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한국 기업을 인수한 회사의 CEO로서 볼보의 M&A 전략과 철학을 들려달라.

 “M&A는 기술과 자본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다. 한국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볼보는 ‘아시아의 문화’를 기를 수 있었다.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플랫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일지 모른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실은 기술적인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생산과 유통의 문제도 그 다음이다. 우리의 M&A 철학은 명확하다. ‘어떻게 두 기업이 하나가 돼서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신뢰다.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두 기업이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소통과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두 기업이 하나가 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우리에겐 ‘볼보 웨이(Volvo Way)’라는 공용어가 있다. 이것은 우리 임직원 모두가 지향해야 할 가치다. 서로를 존경해야 하고, 좋은 커뮤니케이터가 돼야 하며, 고객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대원칙이다. 중요한 건 ‘오픈 마인드’다. 볼보가 한국 기업에 스웨덴식 문화를 강요했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방법은 전혀 이득이 없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무시됐을 것이다. 인수를 한다는 건 ‘한쪽이 일방적으로 배운다’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서로를 배워간다’는 걸 의미한다. 인수한 회사를 가르치려해서는 안 된다. 한국 법인은 이러한 우리 가치의 시험무대였다. 한국에서 볼보 웨이를 실천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됐다.”

 올니 회장과 인터뷰하는 가운데 그룹 커뮤니케이션 책임자가 말을 거들었다. 그는 “볼보코리아는 스웨덴식과 한국식이 동시에 섞여 있다. 많은 서구 기업이 그저 웨스턴 경영방식을 주입하려 하는 실수를 저질러왔다. 그 결과는 대부분 참담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올니 회장이 “그렇다. 결혼과 같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하나의 가족을 만드는 거다”라고 마무리했다.

 볼보코리아는 ‘해외 자본의 직접투자 성공사례’로 꼽힌다. 한국 법인의 초대 사장인 토니 헬샴의 경우 한복을 입고 직원들과 고사를 지내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나의 두 번째 고향”이라고 말하곤 했다. 두 번째 CEO인 에릭 닐슨 사장도 언제나 사무실 문을 열어놓고 소통을 강조했다. 직원들에게는 ‘에릭’이라고 이름을 부르도록 했다. 볼보는 시간외 수당을 따로 주지 않는 연봉제가 야근이 잦은 한국의 업무 특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한국식 호봉제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볼보는 한국 법인의 사장으로 처음 한국인을 선임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인 석위수 사장이 볼보건설기계코리아를 맡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인이 볼보코리아를 외국 기업으로 생각한다.

 “M&A의 가장 큰 소득은 사람이다. 우리는 인수를 통해 한국인의 성실성과 기술력을 선물로 받았다. 우리의 원칙 중 하나는 ‘혼합경영(mix-management)’이다. 이는 스웨덴 경영진과 한국(현지) 경영진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볼보그룹은 M&A 대상 기업의 이사진을 교체하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 우리 모두가 글로벌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이것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삼성그룹도 한국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활동무대는 세계다. 볼보건설기계그룹도 마찬가지다. 볼보그룹 매출의 95%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한다. 볼보에는 스웨덴의 유산도 있지만, 한국의 유산도 있고, 캐나다의 유산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보코리아는 그 어느 나라의 기업도 아니다. 볼보코리아의 사장은 ‘한국의 장점을 가장 잘 이끌어내고, 볼보의 가치를 잘 실천해 낼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석위수 사장이 바로 그 적임자였다. 재고를 최소화하는 그의 생산방식은 전 세계 볼보 공장에 ‘표준 모델’이 되고 있다.”(창원 공장에는 ‘재고는 죄고(罪庫)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고, 이와 비슷한 표어는 중국과 독일 등 전 세계 볼보 건설기계 공장에도 붙어 있다.)

●볼보에서 토니 헬샴은 매우 상징적 인물이었다. 호주 출신인 그는 한국 법인의 성공을 발판 삼아 스웨덴 본사 최초의 외국인 이사회 멤버가 되기도 했다. 그가 지난해 두산인프라코어의 건설기계 총괄사장으로 영입됐다. 이에 대해 볼보 안에서도 말이 많은 것으로 안다. 두산은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볼보의 경쟁자 아닌가.

 (이 질문을 듣고 올니 회장은 큰 소리로 웃었다. 원래 붉은 얼굴이 더 빨갛게 변했다.)

 “물론 나는 어느 경쟁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걸 말하진 않겠다. 거기도 큰 회사고, 나름의 전략이 있을 것이다. 토니는 볼보에서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다. 어쨌거나 볼보는 경쟁력 있는 전략을 가졌고, 익사이팅한 시장에서 경쟁자들보다 앞서 새로운 것을 개발할 것이다. 경쟁자들로 인해 우리의 전략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경쟁은 우리를 더 낫게 만든다.”

●볼보CE의 신제품 라인업은 ‘친환경’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건설기계에서 친환경적 요소는 왜 중요한가.

 “볼보가 제품을 생산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전(safe), 품질(quality), 환경(care for the environment)이다. 안전의 가치는 이미 1920년대에 형성됐다. 이를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환경은 70년대부터 우리의 핵심적인 지향점으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우리는 환경을 비용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이것이 경쟁력이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 이상기후, 배출 가스 등은 현시대 가장 뜨거운 이슈다. 이런 상황에서 연료 효율을 높인 ‘친환경 제품’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가치가 부가된 상품에 대해 소비자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최근 내놓은 신제품은 기존의 것보다 연료 효율을 10~30%까지 끌어올렸다. 하이브리드 굴착기도 양산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승용차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볼보건설기계의 모태 ‘뭉크텔 박물관’

스웨덴 첫 증기기차 만든 곳
볼보 퇴직자들이 안내 봉사

볼보그룹의 ‘볼보 데이(Volvo Day)’ 행사는 작은 도시 에스킬스투나에서 진행됐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서쪽 약 80㎞) 떨어져 있는 곳이다.

 ‘금융위기를 딛고 일어섰으며, 신흥시장에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메시지에 집중하고 있는 이 행사는 한 달 가까이 이어진다. 볼보그룹의 본사가 예테보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행사를 인구 9만 명의 교외 지역에서 진행한 이유는 뭘까. 첫 번째 이유는 이곳에 볼보 기술의 핵심 역량이 담긴 엔진·트랜스미션 생산 공장이 있기 때문이다. 행사에 초대받은 고객과 기자들은 공장 견학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에스킬스투나에는 볼보건설기계의 모태인 뭉크텔(Munktell)박물관이 있다. 179년 전인 1832년 세워진 작은 공장에서 스웨덴 최초의 증기기차가 제작됐다. 농업기계와 방적기계를 주로 생산하던 공장은 이후 볼보에 흡수됐다. 20년 전 볼보는 이 공장을 기업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으로 꾸몄다. 볼보 데이의 손님들은 박물관과 붙어 있는 오래된 호텔에서 묵는다.

 스웨덴 최초의 내연기관이 개발된 ‘뭉크텔의 엔진 생산 작업실’에서 볼보 데이의 만찬이 진행됐다. 볼보 승용차를 판 뒤 볼보그룹은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전통과 자부심에 많은 상처를 입은 것도 사실이다. ‘뭉크텔 엔진 작업실에서의 만찬’은 스웨덴의 자부심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볼보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자는 누구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3시간 넘게 진행된 만찬에는 음악 공연이 곁들여졌다. 모든 노래는 당연히, 아바(ABBA)였다. ‘댄싱 퀸(Dancing Queen)’ ‘맘마미아(Momma Mia)’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 등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노래가 이어졌다.

 만찬장에서 여러 가지 일을 돕는 이들은 볼보의 은퇴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뭉크텔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이곳의 역사와 의미를 방문객에게 설명해 준다. ‘볼보는 어디에서 왔고, 지금의 볼보는 어디에 있는가. 승용차가 아닌 트럭과 건설기계에 볼보의 전통이 있다’는 메시지를 은퇴 노동자의 나이 든 목소리와 주름진 손길로 웅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찬에서는 팻 올니 회장이 말한 ‘열린 자세(open mind)’도 엿볼 수 있었다. 올니 회장은 같은 테이블에 앉은 VIP들과 기자들에게 ‘스웨덴식 건배’를 권했다. 잔을 부딪치지 않고 정중히 잔을 들어 예를 갖추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는 만찬 코스의 메인 메뉴를 따로 시켰다. 햄버거와 감자칩이었다. 43세의 캐나다인 CEO는 볼보의 전통적인 장소에서 열린 스웨덴식 만찬에서 ‘아메리칸식 저녁’을 택한 것이다. ‘개별적인 것을 존중하고, 거리낌 없이 소통한다’는 볼보의 M&A 철학을 올니 회장이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는 한국 기자에게 한국식 건배사를 묻기도 했다. “위하여”라고 알려줬더니, 같은 테이블의 참석자들에게 건배를 권했다. 그는 큰소리로 “위하여”라고 외치며 즐거워했다. 그러고는 아바의 노래를 흥겹게 따라 불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