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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지구촌 NGO 테마 탐방] ④ 인도의 SHI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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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5일 인도 서벵골주 해안에 초대형 사이클론 아일라(Aila)가 덮쳤다. 이틀 동안 파르가나스 등의 지역에 해일과 홍수를 일으키고 저지대는 침수됐다. 거대한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거리를 덮었고, 전기와 식수가 끊어졌다. 대부분 집들이 대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피해는 더 컸다. 200여명이 죽고 3만여 가구 13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갠지스강 하류의 벵갈호랑이 서식지로 유명한 순도르번 지역 102개의 섬 주민들이었다. 뱃길이 끊겨 고립된 상태에서 식량·식수·의약품을 공급받을 길이 없었다. 54개 섬에만 40만명이 살고 있었다.

그때 이들 섬 주민을 돌봐오던 민간 진료선이 떴다. 30km쯤 떨어진 내륙에 자리잡은 지역 NGO인 SHIS(Southern Health Improvement Samity)가 운영하는 병원선이었다. SHIS는 섬 주민들이 고립되자 4대의 진료선과 1대의 쾌속선, 2대의 앰블런스를 급파했다. 배는 의사 및 응급처치 요원들을 태우고 인도정부를 비롯한 각계에서 지원받은 의약품·식수·식료품 등의 긴급구호 물품들을 실어 날랐다.

“우리 병원선의 활약이 대단했지요. 정부 등 여러 기관들이 배를 띄워 섬 주민들을 돌보긴 했지만 우리 병원선은 10년이나 정기 진료를 다녔기에 누구보다 현지 사정에 밝았거든요. 고립된 주민들을 구하고, 섬에 내려 치료와 식수·식량 배급 등 긴급구호를 했지요.” 당시 병원선을 운항했던 하피줄 몰라(48) 선장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며 “아직까지도 복구가 안돼 병원선이 섬을 순회하며 주민들 진료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인 타고르, 수녀 테레사의 도시 캘커타를 중심으로 한 서벵골 농촌지역의 풀뿌리 NGO인 SHIS는 현지에선 거의 정부의 기능을 대신할 만큼 막중한 일을 한다. SHIS의 탄생은 1979년 시골의 한 조그만 찻집에서 시작됐다. 찻집을 운영하던 당시 31세의 대학동창생 모하마드 오합과 사비트리 팔(여)이 약이 없어 죽어가는 폐결핵 환자들을 보고 차를 판 돈으로 약을 사 환자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들의 선행이 알려지자 소설 『시티 오브 조이』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도미니크 라피에르가 지원에 나섰고, 그의 주선 등을 통해 독일·프랑스 등에서 후원이 몰려들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SHIS는 서벵골 최대의 현지 NGO다. 병원선 사업 외에 안과병동과 산부인과, 초등학교, 가난한 소녀들의 공부를 위한 ‘걸스 아카데미’, 청각장애인 사업, 소액대출 사업 등 사업종류만 20가지가 넘는다. 의사와 스탭 5~6명과 X레이 등의 의료장비를 갖춘 병원선 4대가 순도르번의 32개 섬마을을 네 구역으로 나눠 주 1~2회씩 정기 순회 진료를 한다.

SHIS의 병원선 의료진이 섬마을 주민들을 순회진료하고 있는 모습. 사람들 뒤로 보이는 배가 병원선으로, SHIS는 4척을 운영하고 있다.

SHIS의 본부는 캘커타에서 차로 1시간반쯤 떨어진 방가르 시골지역에 있다. 그곳에 5층짜리 2동, 3층짜리 1동의 병원과 학교가 있고 400명 넘는 직원이 근무한다. 캘커타의 사무실과 다른 사업장들까지 합치면 전체 직원 수는 700여명. 웬만한 지자체 규모다. 그 모든 사업 예산을 세계각지에서 들어오는 민간 후원금에 의존한다. 라피에르는 아직도 SHIS의 최대 후원자다. 지난 30여 년간 SHIS를 이끌어온 오합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한다.

“인도에는 돌봐야 할 불쌍한 국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이들이 신발이 없어 맨발로 다니고, 수많은 병든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지요. 정부의 복지정책이 제대로 서기까지는 SHIS 같은 대형 NGO들이 더 많이 나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창호 중앙일보 시민사회환경연구소 전문위원·남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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