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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70cm짜리 덕자 병어, 조무래기들은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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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덕자 병어. 머리부터 꼬리지느러미까지 크기가 70cm에 이르는 큰 병어다. 아래는 구이용으로 많이 쓰는 병어로 약 25cm다.


제사를 앞둔 장날이면 어머니는 으레 큼지막한 병어를 사 오셨다. 내장을 제거하고 염장한 병어는 늘 제사상 한가운데 놓이곤 했다. 전라도 서남해안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병어는 깍듯이 대접받는 고기였다. 그러나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서 병어구이 내놓는 집을 만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다 몇 년 전 어느 결혼식 피로연 뷔페에서 병어를 만났다. ‘오메 반가운 것!’ 그러나 반가운 마음도 잠시, 날름 입에 문 병어 ‘세꼬시’는 비린내가 확 풍겼다. 그날 이후 전남 해남 갯마을 출신 기자는 병어와 이별을 선언했다.

 유월 병어는 비릿하지 않다. 어떤 횟감보다 고소하고 달콤하다. 서양에서도 여름 병어는 높이 쳐 주나 보다. 이놈을 ‘버터피시(Butterfish)’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에서도 최고의 생선은 병어라고 한다. 6∼10월 산란을 위해 전라도 해안을 찾는 병어는 개펄에서 알을 낳고 다시 먼바다로 향한다.

 유월의 여왕 병어를 찾아 전남 목포부터 여수까지 고향 선후배를 총동원했다. 병어는 정치망·안강망 등 고정형 그물로 잡는다. 한데 아직 철이 일렀다. 올해는 겨울이 유독 길어 바다도 여름이 늦다. 취재를 나선 5월 하순은 제철보다 한 달 가까이 앞서 있었다. 그래도 취재를 나선 건 여수에서 올라온 소식 때문이다. 쌍끌이어선에 큼지막한 병어가 종종 올라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부리나케 내려갔다.

 병어는 크기마다 이름이 다르다. 큰놈일수록 맛있는 것은 당연하다.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놈의 이름은 ‘자랭이’다. 모치(숭어 새끼), 껄떡(농어 새끼), 삐까리(감성돔 새끼), 뺀치(돌돔 새끼)처럼 어부들끼리 부르는 병어의 아명(兒名)이다. 세꼬시 하기도 성가신 크기여서 조림을 많이 한다. 퉁퉁 썬 무와 함께 바짝 조리면 황석어만큼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어른 손바닥만 한 것은 ‘병치’라 이른다. 조금 큰놈이 병어다. 최소 30㎝는 돼야 제사상에 올라간다. 이보다 큰놈은 ‘돗병어’라 한다. 돗병어의 ‘돗’은 돗새치·돗돔처럼 큰 생선 앞에 붙이는 접두사다. 50㎝는 넘어야 돗병어로 친다. 지느러미가 크고 돛처럼 생긴 병어도 돗병어라 한다.

 여수 수산물특화시장 초입에 있는 ‘거북수산’ 수족관에서 놀라운 병어를 발견했다. 얼음을 가든 채운 수족관 위로 다금바리만 한 크기의 병어 두 마리가 떡 하니 누워 있는 것이었다. 족히 70㎝는 돼 보였고, 3㎏은 거뜬히 나가 보였다. 주인 김진수씨는 이놈을 ‘덕자병어’라고 불렀다. 큰 병어를 ‘덕대’라 이르는 것은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지만 ‘덕자’라는 말은 처음이었다.

 “덕 덕(德) 자에 놈 자(者)를 써 덕자병어입니다. 덕이 많은 생선이란 뜻이죠(※덕(德) 자엔 크다는 뜻도 있다). 병어는 입이 작아요. 배를 따서 보면 내장도 얼마 안 돼요. 그런데 썰어 놓으면 버릴 게 하나도 없지요. 뼈·지느러미 빼고는 다 먹습니다. 살아 있을 때 제 배는 곯아도 죽어서 사람한테는 많은 걸 남기는 생선이 병어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어부들이 큰 병어를 ‘덕자’라 불렀대요. 아마 이런 대접을 받는 생선은 병어뿐일 겁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맛살, 등살, 날개살, 꼬리살, 뱃살, 날개살. 가슴살

 문득 ‘이래서 병어가 제사상에 올랐구나’는 생각을 했다. 조상님의 공덕을 기리는 날 덕을 지닌 생선이 제사상 한가운데 놓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김씨는 곧이어 ‘7짜(70㎝급 생선)’ 횟감을 해체했다. 병어 작은놈은 잘게 썰어 세꼬시로 먹고, 큰놈은 소금 간을 해 구워 먹는다. 그러나 덕자는 다르다. 부위마다 따로 썰어 먹는 다금바리 회처럼 부위별 칼질이 들어간다(사진). 먼저 비늘을 벗겨야 한다. 병어 비늘은 작고 둥근데 잘 벗겨내지 않으면 배탈이 나는 수가 있다.

 마수걸이 칼질은 이마 부분에서 시작됐다. 한 마리를 잡아도 몇 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다. 이맛살 또는 콧잔등살이라고 한다. 머리 부위 연골과 함께 흰 살이 함께 들어가 있어 마블링 좋은 한우처럼 보인다.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홍어 날개살을 씹는 식감이다. 머리를 해체하고 나면 위아래 꼬리지느러미를 차례로 자른다. 꼬리지느러미에 붙은 살을 날개살이라고 하는데, 운동성이 좋은 부위라 육질이 단단하고 촘촘하다. 물론 식감도 좋다. 이제 몸통 옆선을 따라 고기를 반으로 자를 차례다. 아랫부분은 가슴살과 뱃살이, 윗부분은 등살이 남는다. 가슴살은 광어 뱃살처럼 쫄깃쫄깃하고, 뱃살은 두툼한 편이다. 등살은 한우 등심과 같은 부위이지만 한우만큼 대접받지는 못한다. 가장 퍽퍽한 부위여서다.

 차례대로 한 점씩만 집어먹어도 배가 든든하다. 병어는 초장이나 고추냉이 소스보다는 된장이 좋다. 된장에 고추장을 살짝 넣고 다진 마늘과 다진 고추·참기름·통깨 등을 섞으면 병어회 된장소스가 완성된다. 여수 거북수산(061-663-8588)이 손질한 돗병어회를 택배로 부쳐 준다. 3인분 5만원.

글=김영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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