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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토크쇼의 제왕’ 래리 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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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달 27일 서울 광장동 W호텔 로비에 나타난 ‘토크쇼의 제왕’ 래리 킹(Larry King·78·사진)은 호기심 많은 청년의 차림새였다. 흰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검정 점퍼에 검정 바지, 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킹은 SBS가 주최한 서울디지털포럼(SDF)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이날 출국 직전에 김영희 대기자와 인터뷰했다. 개별 인터뷰를 거절하는 그를 “인터뷰에 관한 인터뷰”만 하자고 회유했다. 그러나 실제 인터뷰에서는 모든 질문에 저항 없이 대답했다. 그는 SDF에 참석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이목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쿠키가 든 접시를 손에 든 채 쿠키를 먹거나 초콜릿 바를 핥았다. 198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25년간 CNN의 간판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를 진행하며 6만여 명의 초대 손님을 무장 해제시킨 그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모습에서 권위주의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성공적 인터뷰 진행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뭐죠.

 “가장 중요한 건 호기심입니다. 호기심이 있어야 좋은 인터뷰를 할 수 있어요.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겁니다. 잘 듣지 않고는 좋은 질문을 못해요. 핵심은 호기심인데 나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남달랐습니다.”

 -인터뷰하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하나요.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바로 묻는 걸 좋아합니다. CNN에 인터뷰를 도와주는 직원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질문거리를 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내게 핵심만 말합니다. 과잉준비가 안 되게 신경 써요.”

 -어떤 인터뷰 주제는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을 텐데요.

 “나는 내가 보통 사람보다 잘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대학에도 못 간 나는 어떤 주제에 대해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요. 의사들은 나보다 의약품에 대해, 변호사는 법에 대해, 관리는 정부에 대해, 호텔 매니저는 호텔에 대해 나보다 많이 알아요. 나는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 물을 만한 기초적인 질문을 하니까 엄청난 지식을 가질 필요는 없죠.”

김영희 대기자

 -그게 인터뷰를 쉽게 하는 비결입니까.

 “인터뷰 대상자를 미리 규정하거나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사전에 조율하지 않아요. 많은 인터뷰 진행자는 초대 손님보다 자신이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인터뷰 대상자를 띄워요. 그래서 인터뷰에서 ‘나(I)’란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나’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중요하지도 않은 내 의견이 들어갑니다.”

 -‘나’ 대신에 ‘우리(we)’를 쓰나요.

 “‘우리’란 말도 안 씁니다. 그냥 묻지요. 왜,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언제, 어떻게라고 묻기만 하면 돼요.”

 -CNN의 상징이던 당신이 없는 CNN이 예전과 같을까요.

 “나는 CNN의 핵심이 아닙니다. 그리고 CNN에서 1년에 네 차례 특집 대담을 진행하고 있으니 여전히 CNN에 속해 있죠. 세상은 변하고, 옛 인물은 사라지기 마련이죠. 삶은 계속되고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거죠.”

 -CNN에서 끗발을 마음껏 누리셨겠네요.

 “그거 내 끗발이 아니라 내게 방송시간을 준 사람, 마이크를 준 사람의 끗발인 셈이죠. 표현을 달리하면 내게서 마이크를 뺏어갈 수 있는 사람의 끗발입니다. 다만 방송을 하는 과정에서 내게도 끗발이 좀 생긴 거죠.”

 -사람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느라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느끼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나도 가끔 트위터를 하지만 중요한 일들만 트위터에 올려요. 예를 들어 어제(지난달 27일)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을 때 그곳 인상과 같은 거죠. 수퍼마켓에서 무엇을 사고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를 트위터에 올리는 건 멍청하고 정신 나간 짓이지요. 트위터를 많이 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비무장지대에서는 어떤 내용을 트위터에 올렸습니까.

 “그곳의 초현실주의적인 인상을 올렸어요. 현실의 세계 같지가 않았어요. 긴장이 도도하게 흐르고, 남북한 군인들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은 내게는 생소한 경험이었어요. 북한 군인들이 바로 내 옆에 있었는데 영양실조로 보였어요.”

 -김정일을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코리안으로 꼽았는데 그를 만났다면 첫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발전한 남한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가를 물었을 겁니다. 남한이 먹을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라고 말하진 않겠지요.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다음 질문을 결정합니다.”

 -뉴미디어의 도전에 대응해 신문 등 전통 미디어의 생존 전략은 무엇입니까.

 “빠른 보도를 해야 해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술 진보는 놀랍습니다. 그 속도에 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이와 함께 인간적인 것도 잊지 말아야죠. 그렇지만 주의해야 합니다. 속보는 좋은 것이나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죠.”

 -나이보다 10년 이상 젊어 보입니다.

 “심장병이 있어 수술을 해서 장거리 여행은 잘 하지 않습니다. 약을 먹고 명상을 자주 하고 많이 걷습니다. 젊어 보이는 덴 마음이 중요해요. 마음먹기에 따라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가족이 최우선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게 후회됩니다. 두 번째 가치는 공동체입니다. 자선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한 돕고 싶어요. 성공한 사람은 성공의 과실을 사회에 환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입니까.

 “아직 말하기 이릅니다.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특히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은 굉장한 사건이었죠. 그렇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느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재선 가능성이 큽니다. 아직 공화당에서 강력한 대선 후보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언제든 상황이 변합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날 수 있죠.”

 -유대인으로서 아랍이나 이슬람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나요.

 “가능한 한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전 유대인으로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자랑스러웠습니다. 나는 공정한 인터뷰 진행자로서 이스라엘인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람은 사촌입니다.”

고졸 신화 … CNN 간판 토크쇼 25년간 진행

래리 킹의 방송과 삶

래리 킹은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복지수당에 의지해 어렵게 살았다. 고교 졸업 후 가사를 돕기 위해 취업해야 했다. 1957년 마이애미에서 리디오 DJ로 방송에 입문한 뒤 85년부터 CNN의 간판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를 시작했다. ‘래리 킹 라이브’는 한 명의 고정 사회자가 최장시간 진행한 방송 프로그램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7명의 부인과 결혼과 이혼을 거듭했으며, 현재 26살 연하의 여덟 번째 부인과 낳은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정리=정재홍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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