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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섹스로 수퍼독성 가진 변종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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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스페인 농부들 “독일, 우리 피해는 어쩌라고” 스페인 농부들이 2일(현지시간) 발렌시아의 독일 영사관 밖에서 과일·채소 등을 쏟아 버리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일은 최근 유럽을 휩쓸고 있는 변종 장출혈성 대장균의 오염원으로 스페인산 농산물을 지목했다가 철회했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지난 일주일간 2억9000만 달러(약 3134억원)의 농산물 판매 손실을 봤다며 “독일에 대한 법적 대응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발렌시아 AP=연합뉴스]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장출혈성 대장균(EHEC O104:H4)으로 인한 환자가 2004년 한국에서도 발생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3일 전남대 의대 신장내과 김남호 교수와 화순전남대병원 배우균 교수에 따르면 2004년 가을, 복통과 혈변 증세를 보인 29세 여성환자의 대변에서 O104:H4 대장균이 검출됐다. 전남대병원으로 후송돼 온 환자는 급성 신부전 증세와 용혈성 빈혈, 혈소판감소증을 나타내 용혈성요독증(HUS) 진단을 받았다. 이 환자는 혈장 교환과 혈액투석 치료를 4주간 받은 뒤 완치됐다. 관련 사실을 기록한 논문은 2006년 ‘연세 메디컬 저널’에 게재됐다.

 배 교수는 “당시 환자는 햄버거 때문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았다”며 “세균 확산과 같은 심각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영재 교수는 “1994년 미국에서 O104:H21에 의한 장출혈성 설사가 유행한 적은 있지만, O104:H4에 의한 발병은 2004년 한국 사례가 세계 최초이자 (이번 유럽 사례 이전까지) 유일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유럽에서만 10개국에서 17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18명이 사망했다. 환자들 중 500여 명은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젊은 여성이 많이 감염됐으며, 과일과 채소가 매개체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럽 질병통제센터는 2일(현지시간) 감염 원인을 “시가(Shiga) 독소 생성 대장균 O104:H4”라고 공식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같은 O104:H4 변종이면서도 지금 유럽에서 번지고 있는 세균이 과거 한국에서 검출된 것보다 훨씬 높은 병원성과 치사율, 항생제 내성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른 세균의 유전자를 일부 받아들이면서 ‘수퍼독성’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 선전의 ‘베이징 지놈 연구소(BGI)’는 “유럽의 대장균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또 다른 대장균 변종인 O25:H4-ST131과 식중독 세균인 살모넬라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연히 생긴 돌연변이를 후대에 물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세균들끼리 수평적으로 유전자를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평적 유전자 교환 중에서도 특히 ‘세균들 간의 섹스’라 불리는 접합(conjugation)이 이뤄질 때 이런 변종이 출현하기 쉽다는 설명이다.

 접합은 한쪽 세균이 선모(線毛·pilus)라는 ‘빨대’로 다른 세균의 세포벽을 뚫은 뒤 플라스미드(plasmid)라는 고리 모양의 DNA를 집어넣는 방식이다. 플라스미드에는 독소 생산 유전자나 항생제 내성 유전자 등이 들어 있을 경우가 많다.

 성균관대 의대 고관수 교수는 "일반적으로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경우 마지막으로 콜리스틴(colistin)이란 항생제를 쓰게 되지만 이번 경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항생제가 신장 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O104:H4에 의해 신부전증을 보이는 환자에게 사용하면 오히려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 교수는 또 “한국에서도 7년 전에 같은 대장균이 발견됐기 때문에 국내 세균들끼리 유전자 교환을 거쳐 ‘수퍼독성’을 가진 변종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대장균=대부분의 온혈동물 창자에 살고 있는 세균으로 일부 변종을 제외하면 무해하다. 독일의 소아과 의사인 테오도르 에셰리히가 1885년 처음 발견했고 그의 이름을 따서 ‘에셰리키아 콜리(Esherichia coli, E. coli)’라고 불린다. O104:H4 등으로 나타내는 혈청형(serotype) 이름은 세포벽에 붙어 있는 지질다당류(LPS)의 종류로 구분하는 O계열 번호와 편모(鞭毛) 단백질의 종류로 구분하는 H계열의 번호 두 가지로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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