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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가르친사위 말고 날라리 벌이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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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거실에서 TV를 치운 지 2년쯤 됩니다. 무심코 TV를 켠 뒤 소파에 파묻혀 “참, 볼 거 없네” 투덜거리면서도 리모컨을 놓지 않던 내 모습이 참 없어보이던 어느 날, 러닝머신이 있는 방으로 TV를 옮겼지요. ‘TV를 보려면 운동을 하라’는 자기주문입니다. 아쉬움은 밭고 넉넉함은 흥건합니다. 가족 간의 대화가 많아졌고, 무엇보다 책 읽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간혹 TV를 볼 때마다 땀을 흘리니 몸 건강 마음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습니다.

 얼마 전엔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끊었습니다. 가급적 인터넷을 멀리하겠다는 의지 표현입니다. 그 속의 수많은 허접무쌍한 뉴스들을 - 그걸 뉴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클릭 저 클릭 뛰어 건너고 있는 나를 발견한 다음이었지요. 애초에 검색하려던 건 하얗게 잊은 채 말입니다. 인터넷 전도사였던 니컬러스 카도 글 쓰는 데 방해가 되는 인터넷을 피해 콜로라도 산 속으로 이사를 했다지요. 하지만 어디 그렇게 팔자가 좋나요. 포털 사이트들을 즐겨찾기에서 지우는 걸로 스스로 구원을 찾을 수밖에요. 그래도 역시 궁함은 적고 족함은 많습니다. 하다못해 사전을 찾다 딴 길로 빠져도 ‘누구누구 열애’ 대신 ‘가르친사위’ 같은 재미난 우리말을 배우는 보너스가 있습니다.

 꼭 TV 치우고 인터넷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나가수’ 안 보고 ‘시크릿 가든’ 안 봐서는 어디 가서 대화나 되겠어요? 인터넷이 책상에서 손바닥으로 옮겨온 시대에 말이 되는 얘기가 아니지요. 하지만 너무 쏠리지는 말라는 부탁입니다. 흔히 말하는 게임 중독 같은 걸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집단사고’가 두려운 거지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가 정의한 이 집단사고는 집단 구성원들이 이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만장일치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심리적 경향을 일컫습니다. 토론 없이 편한 쪽으로 쉽게 합의하고 그것이 최선이라고 자기 합리화해버리는 거죠. 결국 경솔하고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게 되고, 새로운 정보나 변화에 둔할 수밖에 없지요.

 한데 모인 집단이 아니더라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TV나 인터넷에 지나치게 쏠리게 되면 특정한 사안을 두고 응집력 높은 집단이 생겨나지요. TV와 인터넷이 결합되면 그 응집력은 쉽게 배가됩니다. 응집력이 높을수록 다양한 외곽 사고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집니다. 대신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중심으로 끌고가는 집단사고가 힘을 발휘하지요. 그것에 반대하면 바보로 몰리고 적이 됩니다. ‘마녀사냥’이 그래서 나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고립과 공격이 두려워 입을 닫는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이 그래서 형성되고요. 흔하게 보던 일 아닙니까? 타블로 학력을 놓고 그랬고, 서태지 이혼을 두고 그랬으며, 스포츠 아나운서 자살을 가지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쏠려서 생기는 집단사고의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쏠리지 말고, 빠져들지 마십시오.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 걸 항상 경계하십시오. 미국 학자 하워드 블룸의 재미있는 책 『천재자본주의 vs 야수자본주의』에 재미난 얘기가 나옵니다. 꿀벌들은 95%가 동료들과 함께 움직입니다. 가장 수확이 많을 것 같은 꽃무리 집단을 찾아 가지요. 그들의 결정은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집단을 따르지 않는 ‘날라리 벌’들이 있답니다. 반항적 성향을 지닌 이 5%의 벌들은 집단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꽃가루나 꿀도 집단이 아닌 자기 입맛에 맞는 걸 선택하지요. 평소 빈둥빈둥 노는 것 같지만 어느 날 어느 벌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장소를 찾아 날아갑니다. 그 거리가 20㎞가 넘을 때도 있다지요.

 꽃무리에도 한계가 있겠지요. 수확할 꿀이 다 떨어져 꿀벌 집단이 굶게 생겼을 때, 이 날라리 벌들이 돌아옵니다. 자신들이 새롭게 발견한 꽃무리의 위치와 규모를 알리는 의기양양한 ‘8자춤’을 추면서 말이지요. 이들 덕분에 꿀벌 집단은 기아와 양육 실패의 재앙을 모면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인간사회에도 날라리 벌들이 있지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이들이 날라리 벌입니다. 남들과 다른 창의적 사고가 이끄는 사람들이지요. 이 날라리 벌 같은 존재가 되십시오. 기억하기 쉽게 반대되는 예를 들지요. 아까 새로 배웠다는 우리말 ‘가르친사위’를 말했지요? 바로 ‘독창성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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