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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선조들 그림 68점, 노래 닮은 산문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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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손철주 지음, 현암사
304쪽, 1만5000원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 좋은 책이다. 이런 글 쓰기 어렵다. 못써서보다 열없어서 더 그렇다. 이미 글쟁이로 소문난 손철주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작심하고 멋을 부렸다. 제대로 멋을 부렸고 제대로 된 맛이 난다. 손수 고른 우리 옛 그림 68점을 소개하고 있지만, 진한 사골 국물 맛이나 쿰쿰한 청국장 맛이 아니다. 콜레스테롤 적고 깔끔한 지중해 음식 맛이다. 군더더기 없고 간결하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나비는 꽃에서 꽃가루를 옮기고 벌은 꽃에서 꿀을 얻는다. 짧지만 황홀한 사랑이다. 사랑의 덧없음은 그저 인간사일 뿐, 독이 든 아름다움이기로서니 꽃을 탓하랴.”

 산문인데도 늘어지지 않는다. 운이 있고 강약이 있으며 장단이 있다. 그래서 출근길 버스 안 소음을 지우기 위해 귀에 꽂은 음악과도 잘 어울린다. 옛 사람 그림 얘긴데 서양음악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림마다 두 쪽씩 할당된 짧은 글이지만 이 책을 읽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빼도 될 만한 문장 하나도 없는 그의 설명에 따라 그림 감상을 다시 해야 하고, 글맛에 빠졌다가 나오려면 새 그림 보기 전에 책 덮고 한숨 한번씩 쉬어줘야 하는 까닭이다.

 문장만 갖고 얘기하면 섭섭할 터다. 풍부한 전거와 해박한 한시는 적재적소에 끼어들어 감칠맛을 더하고 설득력을 강화한다. 정감 넘치는 순 우리말을 배울 수 있는 건 독자에게 주어지는 보너스다.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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