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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혈, 의사에게 맡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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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채규태
가톨릭의대 병리학 교수

올해 7월 시행되는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안(제대혈법)’은 제대혈(臍帶血, 탯줄 혈액, cord blood)의 수집과 보관, 사용에 대한 규제와 통제를 기본으로 한다. 제대혈법과 시행령안을 보면 새로운 제대혈정보센터(정보센터)라는 기관을 설립하고, 제대혈은행을 기증제대혈은행과 가족제대혈은행 등으로 나누어 중앙 관리를 하며, 부적격한 제대혈은 연구용으로 쓰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그 내용을 읽다 보면 과거의 장기이식법이 생각나 쓴웃음을 짓게 된다.

 1997년 장기를 팔고 사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지자 불법적 장기 매매를 근절하고, 공정하고 신속하게 장기 이식을 관리하기 위해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을 제정,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를 신설했다. 그러나 불법이긴 하지만 자유롭게 허용되던 장기 거래가 사라지면서 공급이 급감했다. 이 때문에 장기를 기다리던 수많은 국민의 가슴이 멍들고, 급해진 환자들은 중국으로 빠져나갔다. 억대의 수술비·체재비를 쓰고, 이식 부작용으로 몸을 버려도 중국 측에 하소연할 수 없는 일이 허다했다. 결국 우리 국민 덕에 중국 이식의학의 수준만 크게 높아진 셈이 됐다. 제대혈법이 초기의 장기이식법과 유사한 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이 법의 시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막고 싶기 때문이다.

 제대혈은 다른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중간엽줄기세포의 원천이 되며 세포치료를 위해 사용한다. 제대혈 이식과 제대혈 유래 중간엽줄기세포 주사가 치료 목적에 사용되면 법으로 규제하고, 통제할 일이 아니라 의사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 의사 과실로 환자가 잘못됐을 때는 의료법에 따라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면 그만이다. 정보센터가 이식의 모든 과정에 개입하고, 규제하고 통제할 내용이 아니다. 정보센터는 말 그대로 어떤 제대혈 은행에 어떤 조직적합성 항원을 갖고 있는 제대혈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도록 정보를 모으고, 교환하도록 도와주면 된다. 정보센터는 온라인상에 있으면 된다. 미국이나 유럽의 Netcord(국제 제대혈은행 네트워크)처럼 유지할 수 있어야 미래를 위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안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기관에서만 연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으로 근시안적 사고다. 제대혈과 중간엽줄기세포가 보건복지부와 관련된 몇몇 연구기관의 전유물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21세기는 다학제 간 연구, 융합연구의 시대다. 보건복지·과학기술·산업자원 등 모든 분야의 융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규제를 과감히 풀어 여러 분야 연구자들이 융합해 연구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채규태 가톨릭의대 병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