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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유독 이웃집 아가씨가 더 예뻐보이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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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폴 블룸 지음, 문희경 옮김
살림, 360쪽, 1만6000원

인간의 모든 행동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든다면 ‘쾌락’도 유력한 후보 중 하나다. ‘쾌락’하면 어딘가 속물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행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언뜻 막연하게 보이는 제목의 이 책은 바로 그 쾌락의 심리적 배경, 인간이 무엇에, 왜 기쁨을 느끼는지를 파고들었다.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지은이는 쾌락이 심오하다고 한다. 인간은 단순히 감각기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쾌감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먹고 마시는 등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문학, 미술, 마조히즘, 종교 등 인간만이 느끼는 쾌락을 파고든 결론이다.

인간은 롤러코스터 같은 아찔한 놀이기구를 타며 고통을 즐기는 유일한 종(種)이다. 그 괴로움을 관찰하면서 더 큰 쾌락을 경험할 수 있는 자의식 덕이다. [중앙포토]

 그는 이를 본질주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본질주의란 심리학 이론으로, 인간은 모든 사물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보고 이를 통해 물리적 세계와 사회적 세계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보자.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 많은 남성들이 코뿔소의 뿔, 물개나 늑대의 성기, 악어 이빨 등 다양한 천연 정력제를 섭취했다. 이는 생식력이 뛰어난 동물의 특정부위를 먹음으로써 그 ‘힘’을 흡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 극적인 예가 있다. 2007년 1월 미국 워싱턴의 한 지하철 역에서 조슈아 벨이라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35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며 모금을 했다. 수 천명이 지나갔지만 모금액은 겨우 32달러에 그쳤다.

명연주자의 위대한 예술임을 사전에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를 보기 위한 실험 결과였는데 이를 두고 지은이는 사람들이 음악 자체가 아니라 음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즐기는 것이라 풀이한다.

 인간만이 고통을 즐기는 유일한 종(種)이란 대목도 눈에 띈다. 뜨거운 물에 목욕하기, 롤러코스터 타기, 매운 타바스코 소스 먹기 등을 즐기는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경험하는 쾌락이나 고통을 관찰할 수 있고 관찰하면서 더 큰 쾌락이나 고통을 경험할 수 있는 자의식 덕분이라는 것이다.

 본질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치우치지 않고 다른 이론을 다양하게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수백만 달러를 들여 추상화를 구매하거나 명문 사립학교에서 라틴어 교육을 시키는 것을 설명하는 ‘신호이론’이 그런 예의 하나다.

예쁜 그림이 아니라 추상화를 살 만한 돈과 안목, 써먹을 데가 전혀 없는 라틴어를 배우는 여유를 보여줌으로써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행위라는 설명이다.

 만만치 않은 주제를, 세계적 석학이 풀어냈지만 의외로 쉽게 읽힌다. 지은이 말대로 가족, 친구 등 일상의 대화에서 얻은 문제의식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 덕분이다.

물론 지은이의 학문적 깊이가 이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유독 이웃집 아가씨를 매력적으로 보고, 유명 연예인의 이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끔찍한 사고 현장을 보려고 차 속도를 늦추는 등 인간의 오묘한 심리를 들여다 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김성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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