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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안한 의원들 왜 세금 받아가나” 시민들, 의정비 환수운동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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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31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의회 3층 경전철조사특위 회의장 앞에 주민 20여 명이 몰려들었다. 시민들이 기다리는 건 ‘스카프 절도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한은실(민주당 비례대표) 시의원이었다. 조사특위 위원인 한 의원이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하자 막으려고 나온 것이다.

 한 의원은 지난달 9일 시의회에서 제명돼 의원직을 상실했으나 법원에 제명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14일 만에 의원직을 되찾았다. 그는 이 기간에 의정비를 꼬박꼬박 받았다. 한 시민은 “염치가 있다면 배지와 그동안 받은 의정활동비를 스스로 반납하는 게 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이 일 안 하는 지방의원들에게 지급한 의정비를 환수하는 운동에 나서고 있다. 대상은 법을 위반해 사실상 의정활동을 못 하는 지방의원들이다. 지금은 당사자가 스스로 의정비를 반납하지 않는 한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고양 지역 3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은 김동기(한나라당) 전 시의원이 받아간 의정비 환수 운동을 지난달 시작했다. 김 전 의원은 지역 국회의원에게 법정한도를 초과한 후원금을 기부하고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재산을 축소 신고한 혐의로 기소돼 당선무효형을 받았다.

 고양시의회가 김 전 의원에게 지급한 의정비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2854만원이다. 시의회는 이 가운데 형 확정일 이후 지급한 218만원을 환수했다. 시민들은 나머지 2636만원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명애 고양시민회 대표는 “당선 자체가 원인무효이므로 그동안 지급한 의정비를 환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산동구선관위는 김 전 의원에게 지급한 기탁금과 선거보전비용 3443만원 전액을 환수했다.

 고양연대회의는 성명을 내고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나 정당이 선거비용을 물어내도록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며 “시의회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김 전 의원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통해 의정비를 받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길수(한나라당) 경기도 광주시의원은 지난달 2일 아파트 신축 인허가 청탁의 대가로 4억4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 등)로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이 의원은 여전히 의정활동비를 받고 있다.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이 구속돼 의정활동을 하지 못한 5월에도 320만원의 의정비가 지급됐다.

 지난 1월 말 판교동주민센터에서 난동을 부린 뒤 의정활동을 중단한 이숙정(무소속) 성남시의원은 2월부터 지난달까지 4개월치 의정활동비 1990만원을 받았다. 성남시의회 관계자는 “의원직을 잃지 않는 한 의정비는 지급된다”며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식으로 반납하는 것 외에 직접 의회에 반납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의정비를 반납해도 의회에서 회계처리를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성남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 의원이 반성의 의미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시민사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방의원은 활동정지와 같은 징계를 당해도 의정비는 받는다. 선거법을 위반해 당선 무효가 되더라도 보궐선거비용 등에 대한 책임도 없다. 아주대 김준한(행정학) 교수는 “일정 기간 동안 의정비를 환수하거나 삭감하는 식으로 금전적 책임을 강제해 징계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길용·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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