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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고인의 명복을 빌지 맙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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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탤런트, 대학생, 교수, 아나운서, 가수, 공무원, 운동선수…. 수많은 사람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들의 사망 소식이 나오면 즉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는 코너가 문을 연다. 고인의 수치심을 덜어주고 명복을 비는 일은 유명인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무서울 정도로 물어뜯다가도 당사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 물러선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명복을 빈다. 일부 나쁜 언론과 네티즌들은 그 사람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을 찾아내 대신 복수(復讐)에 나선다. 망자(亡子)를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이 같은 문화가 자살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 이를 막으려면 명복을 빌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의학적으로 자살은 정신이 아픈 사람의 병적인 문제 해결방식이다. 우울증 환자의 충동적 자살은 우울증을 치유함으로써 예방해야 할 ‘의료 영역’이다. 그런 병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닥친 문제에 무릎 꿇고 자살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미성숙한 인격이 비정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아무리 누추해 보이는 삶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호주의 닉 부이치치는 유전병으로 닭발과 비슷한 모양의 작은 왼발 하나만 몸통에 붙은 채 태어났지만 ‘사지 없는 삶’의 대표로서 지구촌에 행복을 전파하고 있다. 독일의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는 두 발과 두 손이 엉덩이와 어깨에 붙은 ‘바다표범팔다리병’ 환자로 태어나 음악 애호가들에게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수많은 구족화가, 장애 스포츠인들이 주어진 삶 속에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마음으로, 몸으로. 이처럼 난관을 이겨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 훌륭한 삶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 누구도 스스로 삶을 팽개칠 정도로 자신을 미워하면 안 된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죄 값을 치르고 나서 이를 성실히 만회하면 된다. 세상에는 초기에 악행을 저질렀다가 나중에 상상할 수 없는 선행으로 칭송받는 사람이 숱하게 많다. 자살한 사람보다 자살의 유혹을 극복한 사람을 존경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자살한다고 해서 삶이 컴퓨터처럼 리셋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 어렵다고 해도 언젠가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고 감사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날이 올 수 있다. 자살은 이 같은 미래의 기회를 지금 없애버리는 바보짓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살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 무책임하게 저주를 퍼붓는 사람이나 무책임하게 자신을 버리는 사람, 갑자기 망자의 편으로 몰려가서 산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 모두가 이런 문화의 장본인이다. 살인의 문화를 걷어내려면 망자를 무조건적으로 동정, 두둔, 지지하는 행태를 바꿔야 한다. 그 첫걸음은 자살을 ‘비난받아 마땅한 무책임한 행동’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인지상정’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어금니를 깨물고 이성에 따라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시급한 조치가 이것이다.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