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얘들아 걱정하지 마”라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지난주 몇몇 신문과 인터넷 포털에 ‘개교 석 달 만에 40여 명 자퇴·전학…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화제가 됐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신설 A고교가 학생들에게 엄격한 벌점제를 적용한 탓에 학기 시작 3개월도 되지 않아 40여 명이 자퇴 또는 전학 갈 처지에 놓였다는 내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사는 너무 과장돼 오보(誤報)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자퇴생 13명, 전학 간 학생 7명에다 교내 선도위원회에 회부된 학생 20여 명을 더해 ‘40여 명 자퇴·전학’이라고 선정적으로 제목을 뽑았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는 “자퇴생 중에서도 선도위를 거쳐 자퇴로 결론 난 학생은 3명뿐이었고, 전학생도 외국어고로 옮겼거나 부모 직장을 따라 타 시·도로 옮긴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어쨌든 기사가 사회의 이목을 끈 것은 학생 생활지도 방법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논란의 시작은 진보로 분류되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이었다.

 지난해 6·2 선거로 교육감들이 선출된 지 1년이 지났다. 이 중 곽노현(서울)·김상곤(경기) 등 6명이 진보파다. 곽노현 교육감의 경우 지난해 취임 직후 서울교육청 강당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학생들에게 친필 사인을 한 명함을 돌렸다. 앞면에는 ‘꿈의 학교, 행복한 교육혁명’이라는 슬로건이 있었고, 뒷면에는 사인과 함께 ‘얘들아 이젠 걱정하지 마’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사진). 행사에 참석한 일부 교사는 그 명함을 보고 기가 막혔다고 한다. ‘얘들아 이젠 걱정하지 마’라는 말에서 독선과 배타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교육은 연속성이 매우 중요한데, “이젠 걱정 말라”는 것은 “지금까지 잘못된 교육감·교사 밑에서 얼마나 고생 많았니. 내가 다 바꾸고 해결해줄게”라는 식으로 들렸다는 것이다.

 어쨌든 취임 시의 벅찬 포부를 담아 일종의 정치적 슬로건으로 ‘걱정하지 마’라고 호언장담했다 치자. 그럼 과연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서울시 학생들은 교육감 말대로 아무 걱정 안 하고 있을까? 아니다. 학생도 아니고 학부모도 아니다. 성적 걱정, 사교육 걱정이 여전하다. 정책 면에서도 우왕좌왕이 많았다. 선한 취지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아마추어리즘 탓 아닐까. 올해부터 내신 전 과목에 수행평가를 30% 이상 반영하기로 했다가 ‘수행평가 아닌 고행평가’라는 하소연이 잇따르자 뒤늦게 재검토에 들어갔다. 고교선택제를 수정 또는 폐지하겠다는 말에 학부모들이 헷갈리고 있다. 관사를 짓는다고 했다가 일주일 만에 철회한 것은 그나마 애교급이다. 학생인권 논란 때문에 일선 학교마다 생활지도에 애를 먹고 있다. 무상급식을 앞세우니 시설 개·보수, 연수 등 다른 예산들이 쪼그라들었다. 이념 갈등은 가장 큰 걱정거리다. 이성호(중앙대) 교수는 “좌(左)든 우(右)든 간에 의사의 기본 역할은 환자 치료”라고 비유하면서 “학업성취도 평가, 교원 평가, 학생인권조례 등을 정치 쟁점화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 몫”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칭찬받을 점도 있다. 부정부패 추방과 비교적 공정한 인사다. 전임 교육감은 일선 학교를 방문하면 금일봉(세금이다!)을 마치 자기 돈인 양 건네주곤 했다고 한다. 곽 교육감은 교육감이 재량으로 쓰던 뭉칫돈 예산을 없앴다. 그러나 워낙 부패했던 전임자와 차별화한 것만으로 학부모·교사·학생의 걱정이 사라질까. 이제는 이념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정책으로 말해야 한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학부모들 입에서 “교육감, 당신이 더 걱정이오”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행동했으면 좋겠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