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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대동여지도 만들기 … 구멍가게까지 조사하느라 진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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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일 서울 용신동에서 야채가게를 운영하는 박효신 할머니(왼쪽)가 경제총조사를 나온 통계청 김은애 조사원(오른쪽)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본지 임미진 기자가 동행했다. [강정현 기자]


“아이고, 이런 데를 다 왔는가….” 1일 서울 용신동 뒷골목의 한 야채 가게. 10㎡ 남짓한 점포는 문도 없다. 46년째 채소를 판다는 박효신(67) 할머니는 파를 다듬다 말고 조사원 김은애(53)씨를 맞았다. “한 달에 얼마나 파세요? 가게 임대료는 얼마고요?” 김씨의 질문에 넋두리가 시작됐다. “가게 임대료가 한 달에 55만원이여. 겨울엔 김장 거리나 파니까 내 용돈 정도 나오지. 여름엔 밑지고….” 의료보험료 내기가 빠듯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했다. 사업자 등록번호도 없는 구멍 가게지만 김 조사원의 서류철 한구석에 당당히 자리 잡았다. 지난달 23일 시작된 통계청의 ‘2011 경제총조사’에 또 하나의 업체가 추가된 것이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2011 경제총조사’가 열흘을 넘겼다. 이달 24일까지 전국 330만 사업체를 전수조사하는 대형 통계 프로젝트다. 조사를 실행하는 조사원만 2만2000명, 모두 528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조사가 완료되면 한국의 ‘경제 대동여지도’가 완성될 것이란 기대다. 하지만 본지 기자가 1일 조사원을 따라 직접 서울 용신동 일대를 누벼보니 조사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바빠요.” “바쁘니까 나중에 오세요.” 기자가 이날 반나절 동안 방문한 업체는 모두 열두 곳. 이 중 네 곳은 사장이 없어 조사를 하지 못했다. 또 네 곳은 “바쁘니 나중에 오라”고 손을 휘저었다. 사장은 나오지 않고 개가 문간에서 짖어대는 통에 들어가지 못한 가게도 있었다. 김 조사원은 문전박대에 익숙한 듯 보였다. “그럼 언제 오면 좋을까요?”라고 묻고 순순히 물러섰다. “계속 조르면 안 좋은 얘기를 듣기도 하거든요. 다음에 오는 게 상책이에요.”

 조사원들이 많이 듣는 항의는 “나라가 해준 게 뭐 있다고 조사만 하느냐”는 것이다. 매출과 영업이익 같은 정보를 묻다 보니 “세금 더 걷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 점포 임대료나 인건비까지 꼬치꼬치 묻는 것에 대해 귀찮아하는 업주들도 있다. 서울 동대문구청에서 140여 명의 조사원을 지휘하는 신미전(50) 총관리자는 “사업이 잘 안 풀리는 업체들이 더 쌀쌀맞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조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 말했다.

 조사 현장에선 자영업자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금속 단추나 스냅 같은 의류 부자재를 만들어 러시아에 수출한다는 유모(57)씨는 “지난해는 아연·신주 값이 30% 넘게 올라 통 이익이 남질 않았다. 요즘은 원화 가치가 올라가서 또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 수퍼마켓 상인은 “주부들은 죄다 대형마트에 가고 직장인들만 가끔 온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조사가 하소연으로 변하기도 한다. 김 조사원은 “어떤 분들은 조사 하다 말고 30분씩 신세 타령을 하신다”며 “실제로 몇몇 업체는 ‘인건비도 안 나온다’는 푸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고마운 사람도 많다. 김 조사원이 상가 앞을 서성이자 “우리 집도 조사해 가라”고 먼저 말을 건네는 업주도 있었다. 막 사업자 등록을 마친 건설자재 유통업자는 등록증을 꺼내 들고 나와 조사에 협조했다. 야쿠르트 대리점에선 “다리 아플 텐데 앉아서 하시라”며 의자를 내왔다. 야채 가게 박 할머니도 “이런 데까지 나와서 들여다봐주니까 고맙지. 나라에서 조사하는데 다 말해줘야지”라며 김 조사원의 손을 잡았다.

 이런 이들 덕에 조사는 중반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국 140여만 개의 사업체에서 조사가 완료됐다. 40%대의 응답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초반 실적치고 좋은 편이지만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다. 기존 응답률에는 행정 자료로 조사를 대체한 일부 사업체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또 후반으로 갈수록 비협조적인 업체들이 남기 때문에 진도가 더디게 나가기 마련이다. 통계청 경제총조사과 심원보 사무관은 “두세 번 찾아가도 조사에 응해주지 않거나 사업주가 자주 자리를 비우는 업체가 어렵다”며 “조사율을 높이기 위해 전국 조사원들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글=임미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정밀한 GDP 파악 가능 … 고용정책 등에 반영

경제총조사 어디에 쓰이나

경제 대동여지도. 이인실 통계청장은 전국 최초의 경제총조사를 이렇게 표현한다. 150년 전 전국 구석구석을 발로 누벼 만든 최초의 정밀 지도인 대동여지도처럼 처음으로 한국의 산업 실태를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통계조사가 실시된다는 뜻이다. 이번 조사는 기존에 실시되던 산업총조사와 서비스업총조사를 통합하고, 농림어업·건설업·운수업 등 모든 산업을 포괄해 실시하는 전수조사다. 앞으로 5년마다 실시된다.

 내년 7월 조사 결과 확정치가 나오면 정부의 경제 정책의 근간으로 활용된다. 예를 들면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국내총생산(GDP) 수치가 좀 더 정확해진다. 기업체별 총생산액과 원재료비 자료를 활용하면 정확한 기업당 부가가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가가치 총액의 합이 바로 GDP가 된다.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정부는 고용 정책이나 산업 육성 정책 등을 입안하게 된다.

 경제총조사는 또 다른 표본 통계의 모집단이자 기준점이 된다. 통계청 박수윤 경제총조사과장은 “경제총조사가 잘못되면 이를 기준으로 삼아 실시하는 다른 통계조사도 사회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정확한 조사를 위해 업주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2006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경제 전수조사를 시행하는 국가는 39곳이다. 미국은 1810년부터 5년마다 경제총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도 2009년 12월 2차 ‘전국경제센서스’ 결과를 발표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이번 조사를 위해 2007년 11월부터 2년간 300만 명의 조사원을 투입했다. 중국 당국은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8년 GDP를 기존 추정치보다 1조3375억 위안 늘려 31조4045억 위안으로 조정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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