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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진씨, 벽에 붙은 저 덩어리는 대체 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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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즉흥적이고 유희적인 작업으로 자신만의 소우주를 창조해내는 미술가 함진. 검은 점토를 이용해 머리카락처럼 얇은 선과 면을 만들어낸다. 그가 갤러리 흰 벽 위의 드로잉처럼 보이는 자신의 조각 ‘무제1’ 앞에 서 있다. 두께가 7㎝밖에 안 된다.


2004년 pkm갤러리에서 열린 함진 작가의 개인전. 전시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작품 대신 관객을 맞는 흰 벽 때문에 깜작 놀랐다. 그들에게 주어진 건, 돋보기 하나. 작품은 전시장 바닥 구석에 숨어있었다. 관객들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 동안 그의 작품을 들여다 봤다.

 함진(31). 경원대 미대 재학 중이던 20대 초반, 언론의 큰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다. 손톱만한 작은 인형을 만들어 자신만의 소인국을 창조하는 유희적인 작업으로 주목 받았다. 1999년 인사동의 대안공간 1호 ‘사루비아 다방’에서의 ‘공상일기’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90년대 말이라면 대중문화와 미술 등 전방위에서 ‘대안’과 ‘비주류’ 혹은 ‘유희성’이 새로운 코드로 떠오르던 때였다.

 이어 2005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됐다. 한국 작가로는 역대 최연소였다. 이후 파리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 도쿄 모리미술관(2005), 에스파스 루이비통 파리(2008) 등에서 전시가 이어졌다. 한국미술의 새로운 스타탄생이었다.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스타덤에 오른 탓일까.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찾아왔다. 새로운 작업에 대한 압박감이 컸다. 서울 화동 pkm 갤러리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은, 함진의 재도약을 알리기에 충분하다. 30대에 접어들며 작업에 새로운 조형미를 더했다. 예의 ‘마이크로코스믹(microcosmic)’한 소우주가 더욱 정교하고 흥미로워졌다.

 관객을 맞는 것은 검은 합성 점토의 기괴한 덩어리다. 천정에서 늘어뜨려지거나 벽에 붙어있다. ‘공간 드로잉’이란 그의 말대로 갤러리 군데군데를 검은 색으로 쓱쓱 드로잉 해놓은 것 같다. 머리카락만큼이나 얇은 선과 좁쌀만한 덩이가 무정형으로 엉킨, 기껏 10~20㎝의 조각이다. 그러나 들끓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얼핏 외계인이나 우주선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답은 없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의식의 통제를 내려놓은 채, 그저 재촉하는 손의 감각으로 완성했기 때문이다. “손만 아니라 온몸을 다 써요. 소리를 내기도 하고, 머리도 흔들고 눈도 찌푸리고요.”

 즉흥적이고 유희적인 것은 같지만, 인형과 곤충 같은 형상이 사라진 데 대해 “예전이 구상화였다면 지금은 비구상, 추상의 맛을 안 것”이라며 웃었다. “예전엔 작은 조각을 숨겨놓아 관객이 찾아보게 만들었다면, 이번엔 한 눈에 뭔지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어요. 첫 눈엔 그저 검은 뭉치일 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수많은 레이어(layer·층)가 있죠. 저는 제 작품을 그저 쓱 지나쳐 보는 분들이 싫어요. 제가 오래 만든 만큼, 오래 들여다봤으면 좋겠네요.”

 그는 편안하고 단순하고 재미있는 것을 선호하는 세대답게 “사이즈도 작고, 일상적인 재료를 쓰고, 생활에서 영감 받아, 낙서처럼 끼적이는 게 곧 작품”이라고 말했다. 작업실도 따로 없다. 집에서 밥상을 펴놓고 하거나 아니면 카페에서 한다. TV드라마와 컴퓨터게임, 만화 등에 열광하는 대중문화 마니아다. 2년 전 결혼한 부인과 TV보면서 ‘뒷담화’하는 것이 주요 일상이란다.

 “작업을 왜 하느냐고요? 사는 게 재미없어서 하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뭔가를 창조하는 일인 것 같아요. 뭔가 해냈다는 그 성취감과 이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다는 그 느낌. 그게 작업의 동력이죠.” 전시는 7월17일까지. 02-734-9467.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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