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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의 ‘골프 비빔밥’ <19> 그립은 평생 고정불변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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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골프를 할 때 몸과 도구가 처음으로 만나는 지점이 바로 그립이다. 몸과 클럽이 결합하는 모양이나 각도, 그리고 강도가 어떠냐에 따라 스윙에 미치는 영향도 크려니와 스윙의 변화와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는 ‘그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누군가의 초상화를 그릴 때 눈을 어떻게 묘사하느냐 만큼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눈만 그 사람 것과 똑같이 그렸다고 해서 전체적 형상이 그 사람이 아니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듯, 그립 또한 그렇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순간을 포착하는 크로키가 아니라 데생의 과정을 보자면 윤곽을 그리고 눈 코 입의 위치를 잡고 조금 상세 묘사를 했다가 다시 전체를 가다듬고 또 좀 더 묘사하고 또 고친다. 전체와 부분, 부분과 전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완성도를 높여간다. 스윙을 만들어 가는 과정 또한 꼭 그렇다.

스윙이 평생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그립 또한 그렇다는 이야기다. 처음 골프를 배우면서 아주 이상적인 그립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옷을 입고 있을 때처럼 어색하고 어려울 뿐 아니라 그 그립이 그리 오래 유지되지도 않는다. 처음 스윙을 시작할 때는 편한 것이 최고다. 그립의 모양보다는 전체 스윙의 모양을 먼저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클럽을 잡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마음골프학교에서는 초보자들에게 그립을 가르칠 때 클럽이 공과 만나는 장면, 즉 임팩트 장면을 먼저 연출해 놓고 그립을 잡으라고 시킨다. 그립이든 셋업이든 좋은 임팩트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한 일련의 프로세스일 뿐이라는 발상이다. 공도 고정불변의 것이지만 클럽 또한 변수가 아니라 고정된 상수라는 발상이기도 하다.

두 명을 한 조로 편성해 한 사람은 앉아서 공을 하나 놓고 임팩트 때 공과 클럽이 만나는 결합 형태를 상상하면서 클럽을 잡고 있게 한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임팩트 때의 몸의 모양을 상상하면서 익살스럽게 깡충깡충 뛰어서 XY 좌표를 이동한다. 그리고 팔의 모양이나 손의 모양을 어떤 작위적인 조작도 없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그립과 결합하도록 하면, 하는 짓이 우스꽝스러워 그렇지 깔깔거리면서 즐기는 가운데 가장 편하고 이상적인 모양에 근접한 결합 형태가 만들어진다.

왼팔을 축 늘어뜨리고 힘을 빼보면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팔꿈치의 접히는 안쪽 면이 45도 정도 우측을 보면서 손등이 약간 보이는 훅 그립의 형태를 띠게 된다(실은 그 상태가 스퀘어 그립인 셈이다). 또 거의 수직에 가깝게 세워져 있는 클럽을 잡으러 들어가보면 그립이 거의 생명선과 평행하게 잡히면서 아마추어들의 고질병인 야구 그립처럼 잡는 버릇이 예방된다. 게다가 오른 손바닥과 왼 손바닥은 서로가 마주보게 하라고만 조언해주면 코킹과 릴리스라고 하는 손목의 놀림이 자연스러운 그립이 만들어진다.

이 지점이 그립의 완성이 아니라 그립의 출발이고 시작이다. 그렇게 결합시켜 놓고 다이얼을 돌려 라디오의 주파수를 잡듯 좌로도 돌려보고 우로도 돌리면서 날아가는 구질도 감상하게 하고, 그러는 가운데 자신에게 적합한 그립의 각도를 발견하게 한다. 또 인터로킹과 오버래핑 혹은 베이스볼 그립 또는 내추럴 그립이라고 하는 형태의 변화도 시켜본다. 그런 과정을 통해 스윙의 원리, 그립의 형태와 공이 날아가는 궤적과의 상관관계를 체득하게 된다. 그립을 조금이라도 고쳐 놓으면 큰일 날 것처럼 벌벌 떠는 사람이 많지만 원리를 충분히 납득하고 보면 그립은 오히려 상수가 아니라 변수다. 헤드 스피드가 달라져도 그립이 변해야 하고 스윙의 궤도가 바뀌어도 그립은 변해야 한다. 그립이란 상황과 조건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스윙의 한 요소이면서 스윙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 발전해가는 것이라는 점,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마음골프학교(www.maumgolf.com)에서 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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