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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정 캐리커처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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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만화와 만평에 쓰이는 한자 만(漫)은 ‘질펀하다’ 또는 ‘흘러넘치다’는 뜻을 지녔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그린 그림을 말한다. 풍자형 만화를 일컫는 캐리커처(caricature) 역시 이런 자유로운 정신에서 태어났다. 닮아 있기는 하지만 특정 부분을 과장해 인물을 풍자한다. 신문이나 잡지에 등장하는 유명 인물의 캐리커처를 보고 그가 누구인지, 어떤 품성을 지녔는지 알게 되는 건 이 풍자정신 덕이다.

말로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미를 캐리커처는 한눈에 잡아낸다. 미묘한 선(線) 몇 줄이 지나가며 한 인간의 내면을 은근히 빗대 표현하는 것이 캐리커처의 핵심이다.

박기정 화백은 한국만화사에서 독보적인 캐리커처의 영역을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뉴스의 인물을 드러내되 가장 적절하게 그 인물의 마음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한국 사회를 움직인 명사 1000여 명을 캐리커처 했다. 박 화백의 캐리커처가 나오지 않으면 명사가 아니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특히 정치인들의 본질을 꿰뚫는 풍자화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사진이나 초상화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사람 냄새와 인간미를 박 화백의 캐리커처는 한눈에 보여 줬다.

 ‘박기정 표’ 캐리커처의 단골은 정치인, 그중에서도 ‘3김’이라고 흔히 불리던 김대중·김영삼·김종필씨를 가장 많이 그렸다. 이 세 사람이 한국정치사의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코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입을, 김종필 전 총리는 이를 강조해 나름 인물 비평을 담아냈다. 겉모습만 담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게 하는 힘이 박기정 캐리커처의 매력이었다.

 3김의 캐리커처에 얽힌 비사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7년 첫 대선에 출마했을 때 일이다. 선거 참모단 아이디어로 박 화백이 그린 중앙일보 캐리커처를 크게 확대해 걸개로 만들어 썼는데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았으니 저작권에 걸리는 셈이었다. 김 후보는 선거에 떨어졌다. 92년 대선 때는 정식으로 저작권료를 내고 캐리커처를 박은 티셔츠를 제작해 선거운동에 활용했는데 당선됐다는 것이다.

 또 한 명, 박 화백의 캐리커처를 선거에 쓴 사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대선을 앞두고 저녁식사에 초대해 선거용 캐리커처를 주문했고 제대로 값도 치렀다.

박 화백 기억에 따르면 이 무렵부터 한국 사회의 만화가 대접이 좋아졌다고 한다. 청와대가 시사만화가들을 초청해 점심을 낸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박기정 캐리커처는 시대를 제대로 보고, 시대와 함께 호흡하기에 힘이 세다. 독자가 그의 만평과 캐리커처에서 세월을 읽고 동시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다.

자신이 몸담은 사회의 현실을 풍자하면서 그는 그 만화의 힘으로 미래를 꿈꿨다. 늘 현재진행형이었던 그의 만평과 캐리커처는 한국 현대사의 드물고도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됐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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