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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리지 (Thin Lizzy)

중앙일보

입력

자신의 능력을 미처 발휘해 보기도 전에 약물 또는 알콜의 유혹에 빠져 생을 마감하는 뮤지션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3-J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짐 모리슨 Jim Morrison,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를 필두로 본 스코트 (Bon Scott , AC/DC), 존 보냄 (John Bonham. 레드 제플린), 스티브 클락 (Steve Clark. 데프 레파드)......

아일랜드 출신의 하드 록 밴드로는 가장 성공적인 활동을 보였던 씬 리지의 리더 필 리뇻 (Phil Lynott, 보컬.베이스) 역시 우리를 안타깝께 만든 추억의 록커 중 한사람이다.

지금은 유투 (U2), 크렌베리스 (The Cranberries), 코어즈 (The Corrs) 등 많은 밴드나 뮤지션들이 영.미의 음악인들을 앞지르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70년대만 하더라도 그 세력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1969년, 더블린 출신의 가난한 청년 필 리뇻, 브라이언 다우니 (Brian Downey, 드럼), 에릭 벨 (Eric Bell, 기타)이 모여 결성한 씬 리지는 당시 인기 뮤지션이었던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을 연주하며 자신들의 꿈을 키워갔다. 다행히 메이저 회사인 데카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 1집 〈Thin Lizzy〉 (1971년), 2집 〈Shades of a Blue Orphanage〉 (1972년)를 발표하지만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만 했다.

아일랜드의 전통 민요를 록 스타일로 편곡해 녹음한 싱 글 'Whisky In The Jar' (1973년)가 영국 차트 6위에 등극, 가능성을 인정 받지만 에릭의 탈퇴로 인한 기타리스트의 잦은 교체는 해산때까지 씬 리지의 고민거리로 자리잡았다.

필의 오랜 친구이자 현재까지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사랑받고 있는 게리 무어 (Gary Moore)가 공백을 잠시 메우기도 했지만 곧 브라이언 로버트슨 (Brian Robertson)과 미국인 스코트 고램 (Scoot Gohram)의 트윈 기타 시스템으로 정착한 씬 리지는 앨범 〈Jailbreak〉와 싱글 'The Boys Are Back In Town' 으로 야심찬 미국 시장 진출을 감행한다. 일부 평론가들로부터 선배 밴드인 위시본 애쉬 (Wishbone Ash)의 카피 밴드라는 비야냥을 듣기도 했지만 결과는 성공적.

브라이언 로버트슨의 손가락 부상으로 다시 3인조 진용으로 녹음한 'Bad Reputation (1977)'은 중반기 씬 리지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고 당시의 화려한 공연 실황을 수록한 더블 라이브 앨범 〈Live & Dangerous〉 (1978) 역시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여기에 수록된 록 발라드 'Still In Love With You'의 라이브 버젼은 현재까지 사랑받는 씬 리지의 국내 애청곡이다.)

씬 리지의 음반으론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 'Black Rose' (1979년)는 다시 게리 무어가 참여하며 특유의 파워풀한 연주를 앞세우며 'Waiting For An Alibi', ' Do Anything You Want' , 'Sarah' 등의 연속 히트에 이어진 영국 시장 정상 정복에 공헌하지만 특유의 방랑벽(?)으로 또다시 탈퇴, 씬 리지는 또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미지 유어 (Midge Ure, 울트라복스), 스노위 화이트 (Snowy White, 핑크 플로이드 'The Wall' 공연 참여), 키보디스트 다렌 워톤 (Darren Warton)으로 공백을 메꿔보지만 역부족. 결국 필 리뇻은 2장의 솔로 앨범 - 〈Solo in Soho〉 (1980년),〈The Philip Lynott Album〉 (1982년) - 을 내놓았고 씬 리지는 침몰 직전의 난파선 신세로 전락했다. (82년 곡 'Old Town'은 최근 코어즈 The Corrs 에 의해 리메이크)

NWBHM (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의 유망주로 평가되던 타이거스 오브 펜탕 (Tygers Of Pantang)의 기타리스트 존 사이크스 (John Sykes, 화이트 스네이크, 블루 머더)라는 젊은 피를 수혈, 5인조 체제로 정비한 씬 리지는 밴드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사운드로 무장한 'Thunder & Lightning' (1983년)를 발표, 마지막 투혼을 불태웠다. (당시의 공연 실황은 1986년 두번째 라이브 앨범 〈Life / Live〉 로 빛을 볼 수 있었다.)

게리 무어의 대표곡 'Out In The Fields' (1985년)의 녹음에 참여하며 게리와의 진한 우정을 과시한 필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열성을 보였지만 이전부터 그를 괴롭히던 약물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1986년 1월 4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매년 1월 4일, 더블린에선 그를 추모하는 공연이 열리고 있으며 본 조비, 메탈리카 같은 당대의 록 그룹들은 'The Boys Are Back In Town', 'Whskey In The Jar' 등의 곡을 리메이크하며 존경의 표시를 나타낸 바 있다.)

씬 리지가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그들이 해산한 80년대 중반이었다. 'Still In Love With You'가 당시 FM 심야 프로를 통해 다양한 버젼의 형태로 소개되면서 (이중 싱글 'Out In The Fields'의 B면 수록곡은 필청 대상이었다.)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만을 기억하던 록 매니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힘을 앞세운 정통 하드 록 보컬과는 거리가 먼 목소리지만 필의 목소리엔 자신만의 진한 슬픔이 베어 있었고 이는 'Still In Love With You', 게리 무어의 'Parisienne Walkways' 같은 명곡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그를 뒷받침하는 스피드와 멜로디를 겸비한 탁월한 트윈 리드 기타 연주 역시 아일랜드 특유의 향토색을 앞세우며 동시대의 하드 록 밴드와는 차별되는 씬 리지만의 강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현존하는 수많은 그룹들의 이름 뒤편에서 추억의 한 페이지만을 장식하고 있지만 그들만의 고풍스러운 연주는 언제나 많은 록 음악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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