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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을 돌아보라 … 당대 최고 여배우가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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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성춘향’ 50주년 기념상영회와 신상옥 감독 5주기 추모식에 영화인·일반인 300여 명이 참석했다. 왼쪽부터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최은희 여사, 원로 배우 신영균·최지희씨, 이장호 감독. [안성식 기자]


“신상옥 감독님은 늘 ‘필생의 작품을 찍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죠. ‘성춘향’은 감독님이 평소 신조대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찍은 작품입니다. 제 연기에 한번도 스스로 만족한 적이 없었지만, ‘성춘향’은 참 자랑스러운 작품입니다.” 12일 오후 서울 낙원동 허리우드클래식시네마. 신상옥(1926∼2006) 감독이 연출한 ‘성춘향’(1961년) 50주년을 맞아 기념상영회와 5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원로배우 신영균, 김수용·정진우·이장호·이두용 감독, 배우 최지희, 성우 오승룡·권희덕 등 원로 영화인 100여 명이 참석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정대철 민주당 고문도 함께했다.

극장 로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헤치고 휠체어를 탄 신 감독의 부인 최은희(85)씨가 나타났다. 거동이 불편할 뿐 꼿꼿한 태도는 여전했다. 그는 “‘성춘향’을 찍을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50년이라니 그 감회를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먼저 간 남편에 대해 “‘세월이 약’이란 말은 나한텐 해당되지 않는 말 같다. 감독님이 가신 뒤로 하루도 잊고 살아본 날이 없다”고 말했다. 변영주·김태용·권칠인·강대규 등 소장파 감독도 참석했다. 상영회는 300석이 꽉 차는 성황을 이뤘다.

 ‘성춘향’은 국내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와이드스크린 방식의 대형영화)다. 61년 명보·국제극장 등에서 74일간 장기 상영되며 3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당시로선 한국영화와 외화를 통틀어 최고 흥행기록이었다. 신 감독의 제작사 신필름은 이 영화의 성공으로 전성기를 열었다.

 이날 상영회는 신필름 제작부로 연출에 입문한 이장호 감독(신상옥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신 감독 5주기를 맞아 아이디어를 냈다. 68년 ‘춘향’을 연출했던 김수용 감독은 “‘성춘향’은 최은희·김진규 캐스팅이 워낙 독보적이었고, 의상·소품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매우 뛰어났던 작품”이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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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아들인 신정균 감독은 “아버지가 두 번 만든 작품이 2편 있는데 ‘꿈’과 ‘성춘향’이다. 북에 계실 적에 ‘사랑 사랑 내 사랑’이란 제목의 뮤지컬 영화로 ‘성춘향’을 다시 만드셨다. 그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행사가 열린 허리우드클래식시네마도 이들 부부에겐 뜻 깊은 곳이다. 신 감독이 극장을 인수한 후 최씨가 ‘허리우드’라는 이름을 지었다. “우리도 할리우드 못지 않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바람에서였다.

 ◆춘향은 스타여배우의 계보= ‘춘향모 궁둥이 흔들 듯 한다’는 말이 있다. 몸을 몹시 흔들어댈 때 인용하는 말이다. 비유컨대 춘향은 한국 영화계를 흔들어왔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춘향전’은 1923년 이래 지금까지 15회 영화화됐다(제목에 ‘춘향’이 들어간 경우만 해당). 게다가 주인공 춘향은 당대 인기절정을 구가하던 배우들이 맡았다.

 문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구적 미모라는 점도 역대 춘향이의 특징이다. 한국영화사상 유례 없이 열흘 간격을 두고 개봉한 최은희의 ‘성춘향’과 김지미의 ‘춘향전’은 두 걸출한 여배우, 신상옥·홍성기 두 라이벌 감독의 대결로 ‘춘향전(戰)’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결과는 ‘성춘향’의 승(勝). 이몽룡 역 김진규의 스타성은 물론, 도금봉(향단)·허장강(방자)의 감초연기, 화려한 색채감 등에서 경쟁작을 압도했다.

 윤정희·남정임과 ‘트로이카’를 이뤘던 문희도 춘향이었다. 71년 이성구 감독의 ‘춘향전’에서 신성일과 호흡을 맞췄다. 한국 최초로 70㎜ 필름으로 촬영된 작품이기도 했다. 당시 다른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모두 배역을 탐냈지만 결국 가장 한국적인 외모라는 이유로 문희에게 역이 돌아갔다고 한다. 오디션을 통해 춘향이 된 여배우로는 홍세미와 장미희가 있다. 홍세미는 2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68년 ‘춘향’의 히로인이 됐다. 신인탤런트이던 장미희는 ‘성춘향전’ 홍보를 위해 열린 춘향선발대회에서 1등을 했다. 76년 첫 영화인 ‘성춘향전’으로 그는 스타덤에 올랐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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