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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말라는 짓 골라하는 작가들이 나중에 다 뜨던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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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국 현대미술의 약진을 보여주는 장 지오강의 ‘소녀 No. 4’


미디어 아티스트 이용백(45)씨에게 2011년은 특별한 해임에 틀림없다. 6월 4일부터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나가는데 이어 9월에는 중국 베이징 핀갤러리에서 대규모 초대전도 연다. 5월 9~12일 열리는 신개념 프리미엄 아트페어 ‘갤러리 서울 11’에도 참여한다.

이용백 작가

 ‘갤러리 서울 11’에는 그의 대표작인 설치조각 ‘피에타’와 사진 ‘앤젤 솔저’를 내놓는다. 둘 다 이번 비엔날레 출품작이다. 8일 그를 김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작 총 13점을 막 떠나 보낸 뒤였다.

 “신작보다 최근 집중해온 작품을 내놓는 게 보다 안정적일 것으로 봤습니다. 그간 제작비가 달려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퀄러티(질)를 높인 셈이죠.”

 ‘피에타-죽음’은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소재의 조각설치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끌어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떠올리게 한다. 성모 마리아 자리에 FRP 조각의 거푸집을 놓고, 완성된 FRP 조각을 껴안게 했다. 거푸집과 거기서 나온 완성품을 통해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사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별 감흥이 없었어요. 오히려 독일 여성작가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가 충격적이었죠. 실제 아들을 잃은 작가가 만든 모자상이죠. 그런데 과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죽음이 뭘까요. 아마도 자신의 죽음 아닐까요. 물리적 죽음만이 아니라 정신적 죽음이 더 고통스러울 거예요. 창작욕구가 사라진 예술가, 꿈을 잃은 어른들, 꿈이 없는 아이들이 다 해당되겠죠.”

일본의 팝아티스트 요시모토 나라의 ‘호박’(왼쪽 위), 이용백의 조각 ‘피에타-죽음’(왼쪽 아래),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스텐레스 스틸 조각 ‘믿음의 도약’(오른쪽)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거푸집과 조각이 엉겨 붙어 싸움을 벌이는 ‘피에타-증오’도 출품된다. “어렸을 때부터 조각보다 거푸집이 더 재미있고 눈길이 끌렸다”는 그다.

 ‘앤젤 솔저’는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가면서 “꽃군복을 입게 된다면 훨씬 평화로울 것”이라는 익살스런 발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꽃무늬 벽지와 꽃장식 앞에서 꽃을 뒤집어쓴 군인들이 매복하듯 천천히 걸어가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이를 찍은 비디오 영상과 대형사진 등으로 구성된다. 숨은 그림 찾기 놀이처럼 꽃범벅 속에 숨은 총구를 찾아내는, 역설의 미학이 돋보인다. 전쟁과 유니폼, 집단주의 문화, 그리고 미술사에서 소외돼온 꽃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결합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이씨는 홍익대 서양화과와 독일 슈투트가르트국립조형예술대 대학원 조각과를 졸업했다. 회화·조각·사진·설치·비디오 등을 아우르는 전방위 작가로 유명하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란 표현이 제격이다. 386세대가 체험한 한국사회의 집단성과 그를 거부하려는 개인의 자의식을 표현해낸다는 평이다.

 그는 “선생님 말만 안 들으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백남준 선생님의 말만 들었다”며 “(학교와 사회에서)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한 작가들이 나중에 다 뜨더라”며 웃었다. 이어 “서양화과를 다닐 때는 조각에, 조각과 대학원을 다닐 때는 미디어 아트에 빠졌다”며 타고난 ‘삐딱이’ 근성을 내보였다. 다음 프로젝트는 ‘컬처 월’. 서울·베이징올림픽 때 빈민촌 등을 외국인에 띄지 않게 가림막을 설치해 가린 것을 풍자하는 작업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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