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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 점수 인정하는 대학 증가 추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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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외고가 국내 교육기관 중에선 처음으로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위원회로부터 디플로마(고교) 과정을 공식 승인 받았다. 송도와 제주에 설립되는 국제학교에서도 IB과정을 채택했다. 해외 대학 유학을 위한 학력인증 프로그램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국내 상위권 대학에서도 IB 점수를 전형요소로 선택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IB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외고 국제반 강의실. 학생 6명이 외국인 교사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What is retail(소매업이 뭐야)?” “I think that is just like Uniqlo, Giordano, Family mart etc(유니클로, 지오다노, 패밀리 마트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Right, How can we use IT(Information Technology) for retail(맞아, 어떻게 정보기술을 소매업에 활용할 수 있을까)?”

 이들은 정보화 기술이 경제 분야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사례를 연구하는 중이다. ITGS(Information technology in a global society)라 이름 붙여진 이 수업은 경기외고의 IB 프로그램 중 하나다.

 수업은 모두 교사와 학생간 또는 학생 서로간의 토론과 발표로 이뤄진다. 교사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식 수업은 철저히 지양한다. 학생들이 관심 있는 수업을 스스로 골라 들어 집중도도 높다. IB 디플로마 과정에서는 대학처럼 학생들이 수업을 직접 골라 시간표를 짠다.

 수업에 들어가면 교사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정답은 없다. 2차 세계대전에 관한 비디오를 시청한 후 ‘독일이 전쟁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묻는 식이다. 그러면 학생들은 전날 연구해온 내용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해야 한다. 반대 의견이 있거나 보충설명이 필요하면 교사의 질문이 다시 이어진다.

 교사는 철저히 토론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나 생각의 깊이, 준비의 충실도 등을 평가한다. 학생들은 매일 주어지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서를 찾아 읽거나 인터넷 등으로 정보를 검색한다.

 또 매월 1회씩 과목별로 4000단어 미만의 논문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매년 5월과 11월에 치러지는 국제 IB 테스트도 준비하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유승종(경기외고 2)군은 “중간, 기말고사 같은 시험은 없지만 매 수업마다 평가를 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며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계역사 수업을 들은 천혜빈(2년)양은 “특정사건의 시간, 장소 등을 외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주변국의 상황과 당시 정치·사회적 배경을 종합적으로 알지 못하면 수업 중에 발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는데 이젠 적응을 해서 그런지 이 수업이 더 재미있고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지난해 9월 송도국제도시에 개교한 ‘채드윅 인터내셔널’도 IB 프로그램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수업은 이미 IB 교과과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최연준(4년)군을 채드윅 인터내셔널에 입학 시킨 정수훤(여·38)씨는 “IB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어 전학을 했다”고 밝혔다. “여러 학교를 비교했는데 IB 커리큘럼이 가장 맘에 들었어요. 창의적 사고를 유도하는 교육 모습이 좋았습니다.”

 정씨는 지난해 한글날 연준이가 가져온 과제물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수업 주제는 한글날이었는데 ‘발명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라는 숙제였다. 뭔가 잘못됐나 싶어 확인했더니 그 숙제가 맞았다. 발명의 의미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 등을 먼저 알아야 한글 창제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폭 넓게 알 수 있다는 취지였다.

 정씨는 “연준이가 어린 나이에도 숙제를 위해 책 여러 권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 모습을 보고 교육 효과에 확신이 들었다”며 “학교에서 예체능 교육도 다양하게 시켜 균형을 이루게 한다”고 말했다.

 올해 9월 개교를 앞두고 있는 국제학교‘NLCS(North London Collegiate School)제주’도 영국 본교의 IB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라할 예정이다.

 NLCS 제주 피터 데일리 교장은 “IB는 학생의 창의력과 책임감, 자부심을 교육하는데 목적이 있다”며 “종합적 사고력을 길러 장차 한국 내 최상위권 대학뿐 아니라 세계 톱클래스 대학 진학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 IB 디플로마 기본 과목

<그룹1>영문학 또는 세계문학

<그룹2>현대언어 또는 고전어

<그룹3>인문학 또는 사회과학

<그룹4>실험 과학

<그룹5>수학(학생의 흥미도와 실력에 맞춰 여러수준의 수학 코스 제공)

<그룹6>예술 과목(음악, 시각 예술 또는 연극) 또는 그룹 2, 3, 4 중 두 번째 과목
※ 여섯 과목 중 세 과목은 심화 수준을 선택하며, 나머지 세 과목은 표준 수준으로 공부한다.

IB=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 인증 교육 프로그램. 현재 세계 140개국 3105개 학교에서 약 88만9000명의 학생들이 이 커리큘럼으로 공부하고 있다. IB 프로그램은 크게 PYP(초등), MYP(중등), DP(고등)로 나뉜다. 세계 각 지역 IBO 본부의 국제기준 매뉴얼에 의해 교육의 질과 교사 수준, 교육시설 그리고 학생들의 학력수준 등이 지속적으로 감독·평가된다. 한국은 싱가폴에 있는 IBO 아시아본부의 평가와 승인을 받는다. 미국 등 세계 175개국 2544개 대학에서 IB 디플로마를 인정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이 IB 디플로마를 서류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재외국민 특례, 글로벌, 국제학부, 입학사정관 전형 등 수시 전형에서 지속적으로 반영률이 높아지고 있다. 대학과 학과에 따라 입학에 필요한 점수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32~36점(45점 만점)이 필요하다. 옥스포드나 캠브리지 대학은 보통 39~41점을 요구한다.

[사진설명] 최근 IB 디플로마 과정을 승인받은 경기외고의 한 교실에서 외국인 교사가 학생들과 ‘IT의 실생활 활용’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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