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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윤 기자 VS 이 부장 ① 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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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food&이 새 기획 ‘윤 기자 vs 이 부장’를 시작합니다. 50대 부장은 food& 데스크를 맡고 있는 이택희(51) 부장이고, 20대 기자는 현재 food& 음식 담당인 윤서현(28) 기자입니다. 스스로 까다로운 입맛을 말하고 음식에 관한 나름의 원칙이 분명하다는 두 사람이 각자 자신의 성(性)과 세대를 대표해 음식과 음식문화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을 벌입니다. 첫 회 주제는 이 시대 모든 직장인의 딜레마 ‘회식’입니다.

꼭 먹고 마셔야만 하나요
볼링·라이브 감상 … 다 함께 놀면 어때요

#“부장, 술잔 대신 볼링공 돌리는 회식 아세요?”

“탕 탕 탕, 쾅” “와아!” 서울 압구정동 ‘삐에로 스트라이크’에는 볼링핀이 넘어가는 경쾌한 소리와 즐거운 함성이 가득하다.


2009년 한 여론조사 업체에서 직장인 5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바뀌었으면 하는 회식문화는 무엇이냐고 물었다죠. 이에 대해 ‘술잔 돌리지 말았으면(41.5%)’이라는 답변이 1위. ‘영화·뮤지컬 등 공연 회식이 늘었으면(36.1%)’이 2위, 3위는 ‘1차로 끝났으면(17.8%)’이었답니다.

 1, 2, 3차로 이어지는 ‘먹고 죽자’ 식의 음주 회식은 피하고 싶다는 게 직장인의 속마음인 거죠. 특히 선배들의 술잔을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우리 2030은 회식 전 ‘견디셔’를 들이켜며 얼마나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지 부장은 모르실 겁니다. 더군다나 끝까지 자리 지키며 열심히 술잔 받고 돌리느라 녹초가 된 다음날, 전날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선배는 “너 어제 1차 끝나고 가지 않았던가?”라는 의심에 찬 멘트로 맥을 쏙 빼놓기 일쑤죠. 대체 누구와의 인화단결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수고를 한 것인지 허망하기 짝이 없다니까요. 우리의 회식은 매번 이런 레퍼토리의 반복이잖아요. 명색이 친목도모의 장이자 떳떳하게 회사 법인카드를 긁을 수 있는 날인데…. 우리도 이제 술이 없어도 흥이 나는 ‘엔터테인먼트 회식’ 좀 해봐요, 네? 부장!

윤서현 기자(左), 이택희 피플·위크앤 데스크(右)

  제가 부장이랑 함께 가고 싶은 데가 있어요. ‘삐에로 스트라이크’라는 엔터테인먼트 바예요. 가볍게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면서 볼링·포켓볼·다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에요. 들어서자마자 강한 비트의 음악과 현란한 조명이 기분을 업시켜 주죠. 한 번은 2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멤버와 들어간 적이 있는데 한 시간만 하자던 3:3 볼링 게임이 밤새 이어졌다니까요. “촌스럽게 웬 볼링장?” 하고 시큰둥하던 동생들도, “귀찮은데 어디 가서 술이나 먹자”던 언니 오빠들도 어찌나 열심히 볼링공을 굴리던지! 평소 데면데면하던 이들과도 일단 한 팀이 되면 환상의 팀워크를 펼치게 되죠. 그러면서 직장 동료, 선·후배와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스트레이크 한 번에 몇 달 묵은 스트레스도 풀고요. 안주 겸 식사 메뉴인 피자·파스타·치킨은 감탄할 수준은 아니지만 보통 이상의 맛이에요. 종류가 다양해 여러 가지를 시켜서 나눠먹기도 좋죠.

 ‘회식엔 고기’라는 부장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매캐한 연기 맡으면서 술안주로만 먹으면 재미없잖아요. 좀 더 감성적으로 고기를 즐기는 건 어떠세요?

 ‘밤배’에선 7080 포크음악을 라이브로 들으면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어요. 토요일 저녁마다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죠. ‘화로사랑’은 늘 가게에 감미로운 재즈음악이 흐르는 참숯구이 전문점이에요. 생삼겹살·갈비살·꽃살 등을 참숯에 구워먹을 수 있죠. 모처럼의 회식이라면 기분도 낼 겸 제주흑돼지천겹살이 좋겠네요. 케니 지의 색소폰 연주를 들으며 먹는 천겹살 구이가 어찌나 고소하고 담백하던지!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학교의 바로리 사림푸어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음악을 들을 때 도파민이 평균 6~9% 증가한대요.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도파민은 쾌감과 활력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래요. 근데 이 도파민이 음식을 먹을 때도 9%까지 분비가 증가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좋은 음악 들으며 맛있는 음식 먹는 회식이라면 절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지 않겠어요? 부장! 이제 체내 알코올 수치 높이는 대신 ‘행복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자고요. 뒤끝은 없고 추억은 남는 ‘엔도르핀 회식’ 할 만하죠?

윤서현 기자

일단 맛난 걸 푸짐하게 먹어야지
요즘 누가 술 강요하나, 능력껏 마시게

#“내가 언제 강요했나? 회식, 나도 할 말 많다네.”

한 자리에서 20년 넘게 족발과 보쌈을 내는 서울 낙원동 ‘장군족발보쌈’. 오후 5시부터 술 손님들이 이곳으로 찾아든다.



회식(會食)이란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먹는 모임. 사전은 이렇게 설명하지만 머릿속에선 생각이 새끼를 친다네. 먹기 위해 모인다, 술과 음식을 모아놓은 자리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시는 게 미덕이다. 회식은 그렇게 준비하고 진행되지.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살아서 우리는 익숙하지만, 이 회식 패턴에 젊은 부원들은 “선배들은 술에 목숨 걸었냐”고 불만이지. 그 푸념 이해하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대들의 이해를 바라는 푸념이 있다네.

 우선 먹는 것에 왜 그리 매달리는가. 내력이 있어. 한민족이 굶는 것 걱정 안 하고 산 세월이 길면 30∼40년, 짧게 보면 20여 년이라네. 우리 세대는 굶는 걸 걱정하던 사회에서 자랐어. 우리 민족은 반만년 거의 내내 허기에 시달리고, 먹는 것을 탐하며 산 셈이야. 식탐이 유전자에 녹아들지 않았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한국인은 체질상 태음인이 절반을 넘는다고 하네. 태음인의 특징이 식탐·대식이야. 회식 때 음식을 푸짐하게 챙기는 건 민족 생활사 때문이라는 얘기지. 윤 기자, 아시는가. 이 부장이 태음인이란 사실을.

 다음은 ‘회식 갈등’의 주범인 술. 차수 변경과 술잔 강요가 문제라지. 음주 4단계설이 있네. 해구(解口), 해색(解色), 해원(解怨), 해망(解忘). 풀이하자면 ‘입이 풀리고, 미추의 기준이 느슨해지고, 원망하는 마음을 털어내고, 기억의 굴레를 벗어던진다’는 뜻이네.

 회식에 술이 필수인 이유를 설명하기 아주 적절한 말이야(원뜻을 약간 변용하는 구석이 있지만). 회식은 단순히 먹는 자리는 아니라네. 사무실에서 맨정신에 못하던 마음의 대화를 나누고, 부원끼리 인간적 교감의 깊이를 더하고, 마음의 앙금이 있다면 털고, 잊을 건 잊고 하면서 왁자하게 어울리자는 모임 아닌가.

 회식에서 남자 상사가 여자 후배에게 술을 강요한다고? 윤 기자, 요즘 그런 강요를 받고 가만 있는 후배가 있기는 한가? 술을 너무 먹는다고? 1차만 필수, 2차부터는 선택이니 부담 갖지 마시게. 나의 회식 원칙은 맛있는 음식 푸짐하게, 술은 양껏 마시되 강요 않기.

 회식 때는 이런 집을 이용한다네.

고기로 할 때 낙원동 ‘장군 족발 보쌈’에 가네. 고기를 굽다 보면 굽는 데 정신이 팔려 먹고 얘기하기에 산만해지거든. 고기는 삶아 먹는 게 건강에도 좋다지 않던가. 사무실에서 야근할 때 배달시켜 먹던 곳인데 맛이 괜찮아 단골이 됐지. 값도 비싸지 않고 서민적 분위기도 좋고.

해산물로 할 때 대치동 ‘남도사계 고운님’은 완도 출신 주인이 전라도 남·서해안의 제철 해산물을 특산지에서 직접 조달해 쓰는 향토음식점이네. 주 메뉴를 시키면 한 상 가득 차려지는 밑반찬이 제각각 안주로 손색이 없지. 가격표를 보면 좀 비싸다 싶지만 먹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네.

섞음으로 할 때 용산역 앞을 오래 지키다 3년 전 마포로 옮긴 ‘역전회관’은 자네 같은 신참 시절 내가 부장을 따라다니던 집일세. 반세기 역사에 대표 음식은 바싹불고기와 낙지구이. 육회·술국·홍어삼합·굴무침 등 고기와 해물이 고루 있어 선택의 폭이 넓고, 오랜 역사가 맛에서도 느껴지는 집이지.

자, 어떤가. 이래도 회식하자고 하면 꽁무니 뺄 생각만 할 텐가. 나처럼 후배 입맛 이해하려 노력하고 배려하는 부장 많지 않을 걸세. 오해 풀었으면 회식하세. 장소는 내가 소개한 세 곳 중에서 고르고.

이택희 피플·위크앤 데스크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음식점 정보

서울 논현동 ‘밤배’는 24시간 문을 연다. 15명 이상 들어갈 수 있는 4개의 별실도 마련돼 있다.

● 삐에로 스트라이크(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02-6007-8889)=삐에로 전기통닭구이 1만8000원, 버드와이저 생맥주 8000원, 볼링 한 게임당 5000원, 포켓볼 무료, 다트·펀치 500원.

● 밤배(서울 강남구 논현동. 02-3446-6555)=차돌박이 1만원, 호주산 꽃등심 1만9000원, 야채생불고기 7000원.

● 화로사랑(서울 강남구 대치동, 02-555-6696)=생삼겹살 1만1000원, 갈빗살 1만9000원, 제주흑돼지천겹살 1만2500원.

음식점 정보

서울 대치동 ‘남도사계 고운님’에서 주꾸미·새조개·참꼬막의 제맛을 즐길 수 있다.

● 장군 족발 보쌈(서울 종로구 낙원동 49 낙원상가 동쪽 골목 안. 02-743-3557)=족발·보쌈 2만~3만원 / 오후 5시부터(오후 9시쯤 재료가 떨어지는 날이 많음)/ 일요일 휴무.

● 남도사계 고운님(서울 강남구 대치동 894-5 포스코빌딩 뒤 먹자골목. 02-562-9292)=주꾸미·새조개·민어·병어·낙지·간재미·생굴 등 제철 해산물 1인 3만~4만원.

● 역전회관(서울 마포구 용강동 67-1 인우빌딩 1층. 02-703-0019)=바싹불고기, 낙지볶음, 육회, 삼합, 굴무침 등 각 2만~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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