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통영음악제 살려낸 작은 손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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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새 예술감독의 호된 신고식이었을까. 통영국제음악제가 시작된 지 10년, 독일 출신의 세계 정상급 음악가인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올해 예술감독을 처음 맡았다. 그런데 행사 개막(26일) 이틀을 앞두고 ‘윤이상의 고향’ 통영에 위기가 닥쳤다. 내한하기로 했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가 24일 돌연 취소를 통보해왔다.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방사능 누출을 이유로 들었다. <본지 21일자 27면>

 26일 통영시민문화회관엔 긴장이 흘렀다. 오후 7시30분 예정됐던 개막 공연이 30분 지연됐다. 이어 지휘자 리브라이히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공연이 변경된 경위를 설명하며 무대를 열었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방사능 피해를 우려해 내한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대타’로 준비한 공연은 이틀간의 갈라콘서트. 다음 달 1일까지 열린 음악제의 주요 출연진이 미리 나와 맛보기 무대를 꾸렸다. 소프라노 서예리가 말러의 가곡, 배우 윤석화가 어린이 공연의 내레이션, 가수 나윤선이 재즈곡을 선보였다.

 리브라이히의 친정 악단도 지휘자를 도왔다. 그는 2006년부터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이 오케스트라의 단원 4명이 개막 당일 통영으로 날아왔다. 이들은 인천→김포→김해공항을 거쳐 통영시민문화회관으로 직행했다. 급하게 정한 곡목을 연습하고 바로 무대에 섰다. 이날 공연이 30분 늦어진 이유다.

 무대는 불안했다. 조명은 제때 들어오지 않았고, 자막 장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음향도 완벽하지 못했다. 프로그램이 변경되며 출연한 김동진 통영시장의 발언도 작은 논란이 됐다. 통영음악제 10년 역사에 시장이 직접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 시장은 “일본 지진 덕분에(thanks to earthquake) 오늘 연합 오케스트라가 결성됐다. 축복이라 생각하고 듣겠다”고 했다. 한국과 독일 연주자들의 합동무대를 두고 한 말이었으나 표현이 적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연장을 가득 채운 청중은 출연자들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이틀 전 악보를 처음 받아 무대에 오르고, 다른 일정을 반납한 채 통영으로 달려온 음악가들의 정성에 박수를 보냈다.

리브라이히는 앙코르곡으로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들려줬다. 이 곡을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에게 바치고 티켓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뜻밖의 악재에도 흔들리지 않는 통영음악제를 꾸려가겠다는 다짐으로 다가왔다. 오랜 준비와 매끄러운 진행만이 음악회를 빛나게 하는 것은 아닐 터. 역시 최고의 감동은 사람이었다.

통영=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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