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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연장에 휴대전화 전파차단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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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호 05면

흠칫할 때가 있습니다. 음악에 푹 빠져 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내 휴대전화 완전히 꺼졌나? 혹시 버튼을 더 꾹 눌렀어야 하는 거 아닐까?’ 주머니나 가방을 뒤지면 소리가 요란할 테죠. 마음을 진정시켜봐도 께름칙합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이달 초 서울 예술의전당에선 소심한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이 교향곡의 3악장은 특별합니다. 아주 느린 아다지오(Adagio)죠. 브루크너는 자신의 모든 아다지오 악장 중 가장 길고 장중하게 이 3악장을 작곡했습니다. 슬픔인지 참혹함인지 모를 감정이 해결되지 못한 채 30여 분 동안 떠돕니다.
이날 연주한 오케스트라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왔습니다. 1781년 세계 최초로 창단된 교향악단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유쾌한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는 독일의 오랜 전통에 경쾌한 미래를 더했습니다.

사건은 3악장에서 일어났습니다. 객석의 한가운데 자리쯤에 앉은 남성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왜 하필 3악장에서였을까요. 벨소리는 왜 그리 유난하도록 유치했을까요. 그리고 왜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빨리 찾지 못한 걸까요. 벨 소리가 저절로 꺼질 때까지 왜 그냥 둔 것일까요. 도무지 이해 못 한 관객들은 공연 후 온ㆍ오프라인에서 이 남성에게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클래식 음악 인터넷 동호회엔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이 같은 ‘대형사고’ 후에도 한국을 찾을까? 아닐 것 같아 걱정이다”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우리나라 음악회의 질서는 관객의 예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청중 의식이 성숙하면 휴대전화를 다들 끄겠죠. 2000여 명이 휴대전화를 동시에 꺼놓는 예의를 기대합니다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혹시 ‘기술’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공연장 내에서 휴대전화가 저절로 꺼지도록 하는 겁니다. 전파 차단이죠. 예를 들어 도쿄 산토리홀 등 일본 주요 공연장에선 휴대전화가 저절로 먹통이 됩니다. 전파 차단기를 설치했기 때문이죠. 내 전화도 남의 벨소리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술의전당은 “전파차단기는 전파법 제29조와 전기통신사업법 제79조 제1항에 의해 금지돼 있다”고 밝힙니다.

한국에서 전파차단기 설치는 불법입니다. 개정 시도는 있었습니다. 산업자원부는 2000년 공연장 등에서 전파 차단을 허용하도록 정보통신부에 권고했습니다. 예술의전당에 그 이듬해 시험 설치됐고, 세종문화회관은 리모델링하던 2004년 설치를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법은 바뀌지 않았고 차단기는 사라졌습니다. 통신의 자유가 질서 유지를 이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통신 자유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공연 보러올 이유가 없지 않으냐?” 또 한쪽에선 다른 주장을 합니다. “예의는 강제로 집행하는 것이 아니다. 권유와 설득이 우선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론이 무엇이든 이대로 두기엔 브루크너의 8번 교향곡 3악장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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