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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의장 힘 너무 세지면 정치권이 군의 눈치를 볼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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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호 03면

김관진 국방장관(왼쪽에서 넷째)이 3월 8일 국방부에서 합참의장과 각군 총장이 배석한 가운데 ‘국방개혁 307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307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된 3월 7일에서 따왔다. 왼쪽부터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 김성찬 해군 참모총장, 한민구 합참의장, 김상기 육군 참모총장, 박종헌 공군 참모총장. [중앙포토]

‘국방개혁 307계획’에 대한 ‘원 포인트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3월 7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돼 ‘307’이 붙은 이 계획은 73개 과제를 담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하나, ‘합참 개편’에 대한 반발이 갈수록 심해진다. 예비역 장성들은 김관진 국방장관을 야유하고, 영관급 현역들은 청와대에서 이 작업을 주도하는 김태효 대외협력비서관에 반발했다. 핵심은 ‘합참의장 권력 강화’다.

예비역 장성들의 거센 비판 직면한 국방개혁 307계획

3월 23일 오전 11시쯤 국방부 대회의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국방 정책 설명회’에 재향군인회·성우회 회원인 ‘옛 별’ 50여 명이 모였다. 육군 20여 명, 해·공군 20여 명이었다. 6·25 영웅 백선엽 장군도 나왔다. 장관은 307계획을 길지 않게 설명했다. 질의에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급랭했다. 예비역들은 ▶합참 개편 자체 ▶절차 ▶개편의 실효성을 짚었다. ‘한 시간 설명 뒤 점심’으로 예정됐지만 2시간30분 비판과 질타가 이어졌다. 해·공군만이 아니라 육군 출신인 전 합참의장, 전 연합사 부사령관도 가세했다. 가히 ‘별들의 반란’이었다. 본지는 익명 참석자의 메모와 이문호 공군전우회사무총장의 회의 기록을 입수해 재구성했다.

장관의 말이 끝나자 연합사 부사령관(4성 장군) 출신인 장성 장군(육사 21기)이 나섰다. 그는 군 개편을 ‘통합군제 개편’으로 규정하고 “통합군제는 나치와 일제, 러시아·중국·북한의 방식이다. 1인에게 무력이 집중된다. 권력이 집중되면 정치가 군의 눈치를 본다”고 했다.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 정부 때 군은 ‘818 군 개혁’으로 군정권과 군령권을 분리했다. 군정권은 인사를 포함한 일반 지휘권, 군령권은 작전 지휘권이다. ‘총을 지휘하는 대장’과 ‘사람을 지휘하는 대장’을 각각 의장과 각군 총장으로 나눈 것이다. 또 군사정권을 등장시킬 수 있는 ‘거대 군’을 막기 위해 당시 뜻있는 군인들이 온몸으로 노력한 결과다. 그런데 이번엔 거꾸로다. 의장에게 군정권과 각군 총장에 대한 작전지휘권(군령권)을 준다. 군정·군령권이 거의 통합된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전투력의 효율적 통합’으로 설명하지만 쿠데타 걱정을 해온 예비역들은 아니라고 한다.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이 장 장군의 발언을 이었다.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안 된다. 현 개혁안은 각 군의 전문성을 결여시킨다. 73년 해병대와 해군이 통합됐는데 지금까지 문제”라고 했다. 이석복 예비역 장군(육사 21기)은 “개혁안에 따르면 합참의장의 기능이 16개나 돼 지나치게 힘이 집중돼 있다”고 했다. 이성호 전 해군총장은 “현 합참 체제가 뭐가 잘못됐는가. 합동성의 기본은 지휘부의 능력에 있다”고 했다. 김창규 전 공군총장은 “G20 국가는 통합군제를 안 쓴다”는 요지로 말했다.

김종환 전 합참의장(2003~2005)은 “합참은 지금도 강력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내가 합참의장을 해보니 충분한 권한이 있었다. 의장이 인사권을 가지면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현역 군인들이 국방안보를 정치적으로 잘못 판단한다. 해·공군만 아니고 육군도 예비역도 반대다. 군 이기주의로 몰지 말라”고 했다. 3월 7일 개혁안 보고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예비역의 압력을 받지 말고 자군 위주로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한 데 대한 반발 같았다. 그는 “개정안에 따르면 합참의장의 지휘 폭이 과대해 나보고 의장을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도 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88년 당시 중령이던 김 장관은 ‘818 기획단’에 소속돼 조영길·이석복·조건환 예비역 장군 같은 선배들과 함께 ‘반통합군’ 개혁안을 만들었다. 그런데 23년 뒤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것이다.

이한호 전 공군총장은 “2012년은 안보상으로 가장 취약한 시기이고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준비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이런 때 군의 근본인 군제를 왜 바꾸려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조영길 전 국방장관은 “나는 818 개혁의 책임을 맡을 때 통합군은 안 된다고 했다. ‘옷을 벗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들었다.(군 관계자는 “보안사가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공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질책했다.

개혁안의 출발점인 천안함 사태의 원인 진단도 비판 받았다. 김 전 의장은 “문제는 합동작전 능력, 지휘능력의 결여이지 제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합참의 무능과 무지의 소치(안 전 총장)” “사람이 잘못한 것(장성 장군)”이란 말이 나왔다.

위법성도 거론됐다. 안 전 총장은 “이런 계획은 청와대 보고 전에 해야 한다. 이미 확정한 뒤 이런 자리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절차가 생략됐다. 위법이다”라고 했다. 김태효 대외협력비서관은 22일 “3월 7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확정된 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개편을 하려면 각 군 참모총장의 군무회의를 거치고 국군 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없었다. 그런데 확정된 듯이 말하면 위법이란 것이다. 이갑진 전 해병대사령관은 “73년 해병대 해산은 국군조직법의 변경 없이 해 나중에 법을 수정했다”고 했다.

불편해진 듯 김 장관이 끝내려 하자 김종환 전 의장이 “합참의장을 지낸 사람의 말도 안 듣느냐”고 했다. 김 전 의장의 발언 뒤 장관이 다시 “그만 질문하고 식사하자”고 했지만 이번엔 조영길 전 국방장관이 “밥은 집에서 먹어도 된다. 할 말은 다 하자”며 나왔다.

마무리에 나선 장관이 “우리의 군제가 (패전 국가인) 일본·독일처럼 느슨한 합동군제”라면서 “개편안은 미래전에 대비하고, 군의 혼란을 가져오지 않으면서 합동성을 강화할 수 있는 안”이라고 했다. 그가 “통합군제가 아니다”라고 하자 거의 모든 참석자들이 “에이~, 우~우~”라고 했다. 오후 두 시였다.

‘307개편’에 대한 반발은 예비역만이 아니다. 전날 22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는 국방개혁 세미나가 있었다. 김태효 대외협력비서관이 왔다. 김 비서관은 “자군 이기주의를 떨치고 원로와 선배들이 군의 변화를 격려해야 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그런데 이한호 전 공군총장이 군 구조 개편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307개편’을 비판하자 김 비서관 뒤로 앉아 있던 현역 영관급 참석자들이 두 차례 요란하게 박수를 쳤다. “쿠데타 가능성이 있다”는 플로어의 지적에도 박수를 쳤다. 1월 말 계룡대에서는 국방부 국장의 대령급 상대 ‘합동군 설명회’가 있었는데 ‘통합군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또 1월 초 대령급 이상 ‘합동군 설명회’ 뒤에도 해·공군 위주로 반발이 심각하게 제기됐었다.(중앙SUNDAY 1월 9~10일자) 한 예비역 장성은 “성우회는 23일 발언들을 취합해 출판하면서 조직적인 움직임을 벌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강력한 군권’을 왜 예비역 장성들이 반대하는지 이한호 전 공군총장에게 물었다.

-왜 반대하나.
“문민 국방장관 때 비상사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라. 군 경력 2~3년인 국방장관은 40년 군 경험자인 합참의장의 힘을 못 다룬다.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현재 군 개편을 다루는 청와대 실무 책임자와 대통령의 군 경험은 전무하다. 818개편 때와 정반대다.)

-다 천안함 같은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 아닌가.
“천안함은 합동성 문제도 상부 지휘구조 문제도 아니다. 군의 정보분석 능력, 위기의식, 상황 판단 능력, 전력운용에 대한 결심, 응징 의지 부족이 문제다.”

-현재 합참으로도 잘할 수 있나.
“그렇다. 합참의 결심과 지시만 있었다면 보복 작전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출격했던 F-15 대대장은 ‘F-15가 울고 있다. 합참 승인만 있었으면 도발 원점을 박살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럼 뭘 해야 하나.
“합동성 강화다. 합참의장, 작전본부장, 작전부장, 작전처장이 모두 육군인데 어떻게 합동성이 나오나. 당장 육·해·공군으로 균형 편성된 참모진을 데리고 작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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