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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족쇄 채우는 휴대전화 가격 뻥튀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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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호 35면

“고객님, 쓰고 계신 단말기를 무료로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꿔드립니다.”
모르는 번호에서 걸려온 전화는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거나 오랜만에 커피 한 잔 뽑아 든 여유로운 때거나 짜증 나기는 마찬가지다. 들어봐야 “시골에 좋은 땅이 있으니 투자하라”는 권유만큼이나 도움이 안 된다. ‘공짜폰’이라고 부른다고 다 공짜가 아니다. 그나마 조건을 잘 따져보지 않으면 덤터기 쓰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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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휴대전화 단말기, 특히 스마트폰은 국내 가격이 유달리 높다. 아이폰4의 경우 32기가바이트(GB) 모델 기준으로 미국 출시가는 699달러다. 세금을 더해도 80만원 정도다. 하지만 똑같은 기계인데도 한국에서는 출고가를 94만6000원으로 매겼다. 미국에서 550달러(60만원) 안팎에 팔리는 갤럭시S의 국내 출시가는 94만9300원이다. DMB 등이 추가됐다고 해도 가격 차이가 지나치다.

사실 소비자들이 제조업체로부터 직접 단말기를 살 수 없는 한국에서 출고가는 큰 의미가 없다. 출고가는 통신업체가 단말기 제조업체로부터 사들이는 장부 가격일 따름이다. 100만원짜리 단말기가 있다고 하자. 통신업체는 제조업체에서 사들이면서 80만원만 준다. 20만원은 ‘제조사 보조금’이다. 이 단말기를 2년 약정으로 고객에게 판다. 이때 20만원 정도의 약정 보조금을 준다. 나머지 60만원은 월 2만5000원씩 할부로 내야 한다. 하지만 통신업체들은 “월 5만5000원짜리 요금제를 쓰면 할부금을 깎아주겠다”고 유혹한다. 소위 요금제 보조금이다. 이렇게 해서 100만원에 육박하는 스마트폰을 ‘공짜’로 사서 매달 비싼 요금을 내고 쓰는 ‘한국형 단말기 에코시스템(생태계)’이 완성된다.

소비자가 2년 약정을 채우면 ‘출고가 뻥튀기’의 문제점을 체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간에 해지하려면 얘기가 달라진다. 1년 쓰고 통신사를 옮기려면 50만원 가까운 돈을 물어내야 한다. 60만원에 대한 남은 할부금은 30만원이지만 위약금은 출고가를 기준으로 부과하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약정을 채울 때까지 쓰게 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동통신업체와 휴대전화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단말기 출고가와 보조금 등을 조사하겠다고 칼을 빼 들었다. SK텔레콤 등은 바로 단말기 출고가 인하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출고가를 낮춰도 그만큼 보조금을 줄이면 소비자가 실제로 내는 돈은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약정 없이 새 단말기를 사서 싼 요금제로 쓰려는 고객이나, 약정 기간 중 통신업체를 옮기려는 사람에게는 유리해진다.

이 참에 통신업체만 단말기를 판매하는 유통 구조도 바꿔야 한다. 외국에서는 분실·도난 등으로 사용할 수 없는 단말기의 고유번호(IMEI)만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관리한다. 유독 한국에서는 통신업체에 고유번호를 등록한 단말기만 쓸 수 있는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운영한다. 외국에서 사온 단말기라도 통신업체에서 등록을 거부하면 쓸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단말기 유통을 통신업체가 독점하고, 결과적으로 출고가를 뻥튀기해 고객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 ‘고유번호 화이트리스트’를 폐지해 단말기를 자유롭게 등록해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유독 높은 출고가를 매기는 악습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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