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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유엔의 대북 지원 권고, 투명성 확보가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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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엔이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지원을 국제사회에 권고했다. 유엔은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북한에 실사단을 보내 식량 부족 실태를 조사해 왔다. 세계식량계획(WFP)·유엔식량농업기구(FAO)·유니세프(UNICEF) 등 3개 기구는 북한의 9개 도, 40개 군에 대한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600만 명 이상의 북한 주민에게 43만t의 식량을 긴급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 지원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미국의 행보가 우선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인도주의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는 분리하겠다며 그동안 대북 식량 지원을 강하게 시사해 왔다. 마크 토너 국무부 부대변인은 그제 정례 브리핑에서 “대북 식량 지원의 기준은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도 엄격한 분배 모니터링을 전제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 재개를 촉구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유엔 기구의 보고서에 대한 평가 작업을 시작으로 지원 규모와 시기 등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와의 물밑 협의가 이미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측의 책임 있는 조치를 대북 식량 지원과 연계하고 있다. 따라서 당장 지원에 나서긴 곤란할 것이다. 다만 영·유아를 비롯한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현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대북 직접 지원은 어렵더라도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지원 가능성까지 배제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이 대규모 지원에 나설 경우 우리가 난처해질 수 있다.

 물론 전제는 있다. 북한에 지원된 식량이 필요한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감시할 수 있는 철저한 모니터링 체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대북 지원에 앞서 국제사회는 북한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분배의 투명성부터 확보해야 한다. 북한에 들어간 식량이 굶주린 주민들에게 가지 않고, 군용미로 전용되거나 기득권층을 배 불리는 데 쓰인다면 이는 인도주의에 대한 우롱이고, 모독이다. 식량 지원에 앞서 분배의 투명성 확보가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