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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갑자기 잠드는 기면병, 호르몬 부족이 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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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사로 근무하던 최영희(가명·26·경기도 양평)씨는 최근 직장을 그만뒀다.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손님 머리를 손질하다 잠들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고등학생 시절 시험을 보다 잠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는 낮잠은 사회생활 후에도 이어졌다. 병원을 찾은 최씨의 병명은 뇌에 문제가 생겨 낮잠을 조절할 수 없는 ‘기면병’이었다.

환자 2000명에 1명 꼴 … 유전적 경향 있어

기면병 환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수면의 질을 평가해 치료방법을 결정한다. [중앙포토]

기면병은 낮에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잠드는 수면질환이다. 잠을 참으려는 의지를 발동하기 전에 꿈나라로 향한다.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고 나서야 인지할 정도다. 심하면 자전거를 타는 도중에도 잠든다. 세계적으로 2000명에 1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한다.

 기면병은 대부분 뇌 문제로 발생한다. 뇌 깊숙한 곳에는 체온·식욕·운동기능을 조절하는 시상하부가 있다. 이곳에선 하이포크레틴(Hypocretin)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하이포크레틴은 각성에 관여해 수면과 관련된 뇌파를 조절한다. 기면병 환자들은 이 하이포크레틴 분비가 적 은 것이다.

 하이포크레틴 부족은 유전적인 경향이 있다. 기면병 증상은 중·고등학교 때 시작해 중년까지 이어진다. 환자의 약 30%는 중년 이후에 발생한다.

가위눌림·환각 … 카멜레온처럼 증상 다양

기면병의 대표 증상은 조명의 스위치를 내려 일순간에 소등한 것처럼 잠이 드는 ‘주간졸음증’이다. 말할 때, 물을 마시다가도 잠에 빠진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수면발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기면병 증상은 주간졸음에만 그치지 않는다. 색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탈력발작·가위눌림(수면마비)·환각 같은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다.

 탈력발작은 기면증 환자의 약 70%에서 나타난다. 웃고, 화내고, 흥분하는 심경의 변화가 생기면 연체동물처럼 몸에 힘이 빠지고 주저앉는다.

 흔히 ‘가위눌림’으로 부르는 수면마비와 환각도 기면병 환자의 30~40%에서 나타난다. 수면마비는 잠에 들 때나 깰 때 정신은 또렷하지만 몸이 마비돼 움직이지 못하는 현상이다. 당사자는 심한 공포감을 느낀다. 누군가 건드리면 마비는 사라진다.

 기면병 환자는 환시·환청·환촉과 몸이 공중에 뜨는 느낌처럼 다양한 환각도 경험한다. 기면병에 하지불안증후군·코골이·이갈이 같은 다른 수면질환이 겹치면 밤잠의 질이 떨어져 악순환이 이어진다.

뇌 호르몬 기능 돕는 치료제 효과

다행히 기면병은 중년 이후 증상이 점차 개선된다. 하지만 10대 때 시작해 수십 년 동안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 편이 낫다.

 야간에 충분한 수면을 취했는데도 낮에 심한 졸음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기면병을 의심한다. 기면병은 밤잠의 수면 질을 평가하는 수면다원검사와 낮에 5회 정도 잠을 자게 한 뒤 수면에 드는 평균 시간을 측정하는 다중수면잠복기 검사 결과를 종합해 판단한다.

 낮에 잠드는 시간이 평균 8분 미만이고, 잠들자마자 꿈을 꾸는 렘수면(REM sleep)에 빠지는 게 2회 이상이면 기면병이다. 기면병이 없는 사람은 첫 꿈을 꿀 때까지 약 80~90분이 걸린다.

 현재 기면병은 완치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밤잠을 잘 자기 위한 수면 위생수칙과 약물요법으로 개선할 수 있다. 수면 위생수칙은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 하루 8시간 이상 수면 취하기, 잠들기 5시간 전 40분간 땀 흘려 운동하기, 잠자리는 수면과 부부 생활을 위해서만 사용하기 등이다. 기면병 환자는 짬을 내 낮잠을 자면 졸음이 사라지고 상쾌함을 느낀다. 기상 후 약 5시간 간격으로 15~20분 정도 낮잠을 청하자.

 생활요법으로 졸림증 개선 효과가 없으면 치료제의 도움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기면병에 효과 있는 치료제는 단 하나(프로비질)다. 뇌의 시상하부에만 작용해 기면병의 원인인 하이포크레틴 호르몬의 역할을 대신한다. 하루 한 알 복용으로 12시간 동안 졸림증을 개선한다. 일부에서 가슴 두근거림, 두통처럼 경미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황운하 기자
도움말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
코모키수면센터 신홍범 원장

기면병은=낮에 시도 때도 없이 잠이 든다. 뇌 깊숙한 곳의 시상하부에선 각성에 관여해 수면 뇌파를 조절하는 하이포크레틴 호르몬이 생성된다. 기면병 환자는 이 호르몬 분비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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