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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표지 4000장은 그대로 현대사 9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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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시사주간지 ‘타임’은 뉴스메이커를 표지 인물로 내세우고,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예술과 저널리즘의 접목이었다. 왼쪽부터 1923년 3월 3일자 창간호(당시 은퇴 선언을 한 조지프 캐넌 미 하원 의원장의 초상 드로잉을 표지 삼았다), 62년 4월 6일자(J 부체가 그린 소피아 로렌의 초상), 66년 4월 8일자(‘타임’ 최초의 글자 표지), 72년 1월 3일자(닉슨은 ‘타임’ 표지에 61회 등장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1년 9월 14일자(9·11 테러를 다루며 최다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세계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 ‘올해의 인물’ ‘곤경에 처한 전세계 독재자 10명’….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명단은 지구촌의 화제가 된다.

전세계 독자로부터 90년 가까이 얻어온 신뢰 때문이다. ‘타임’의 역사와 20세기 현대사를 교직한 『TIME』(부글북스)이 번역·출간됐다. 부제는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 그만큼 시각자료가 풍부하다.

저널리스트인 노베르토 앤젤레티·알베르토 올리바가 6년에 걸쳐 타임을 거쳐간 기자들과 사진작가, 에디터들을 인터뷰했다. 저널리즘의 역사, 나아가 격동의 20세기를 알알이 보여준다. ‘타임’의 표지만 훑어도 현대사를 꿸 수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닐 듯싶다.

 저자들은 ‘타임’에 대해 “자료는 편집돼야 하고, 목소리는 절제돼야 하고, 정보가 지식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인간의 손이 필요하다”며 “옥석을 구분하고, 시시한 것과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아이디어야 말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타임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가치”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가격하락을 표현한 그래픽. 타임은 잡지 디자인의 혁신을 일궈왔다.


◆혁신적인 편집=‘타임’은 1923년 3월 3일, 당시 20대 초반 예일대 동창생이던 헨리 루스(1898~1967)와 브리튼 해든(1898~1929)이 창간됐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뉴스를 다른 방식으로 전할까에 골몰했다. 결론은 ‘뉴스를 맥락 속에 집어넣기’였다. 독자들을 사건현장에 있는 듯 끌어들이는 내러티브 스타일의 기사, 매회 표지에 올린 뉴스메이커 사진과 초상, 뉴스메이커 중심의 기획 등은 이런 고민에서 나왔다. 1945년 윈스턴 처칠이 선거에서 패했을 때 그의 입에 물려 있던 시거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까지 묘사할 정도였다.

 창립자들은 잡지 표지(지금까지 총 4000여 장)를 매우 중시했다. 특히 유명인사 추모 특집판은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표지 인물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림에 참여한 아티스트들도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로버트 라우셴버그·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이 표지작업에 참여했다. 표지 디자인의 핵심은 1927년 처음 선보인 빨강 테두리. 그 안에 담긴 정보는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는 뜻이었다.

◆‘올해의 인물’ 성공=1927년부터 선정해온 ‘올해의 인물’은 역시 ‘타임’의 트레이드마크다. 우연으로 시작해 전통으로 굳어졌다. ‘올해의 인물’에 처음 이름을 올린 이는 대서양 단독 비행에 성공한 찰스 오거스터스 린드버그. 린드버그 성공담을 처음에 부실하게 다룬 것을 만회하려고 임시변통으로 만든 게 ‘타임’의 얼굴이 됐다.

 최고 히트작은 9·11 테러 공격을 다룬 2002년 9월 14일자다. 326만부나 팔렸다. 케네디 주니어 추모판(99년 7월 26일자, 130만부), 다이애너 추모판(97년 9월 15일자, 118만부), 마이클 잭슨 추모판(2009년 7월 7일자, 54만부) 등도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책 말미에 리처드 스텐겔 현 편집장 인터뷰가 실렸다. ‘타임’의 미래 변화상을 묻는 질문에 그는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에도 지적이고 우수한 기사에 돈을 낼 것이다.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은 타임의 DNA(유전자)를 어떻게 간직해 내느냐다”라고 답했다. 아날로그 미디어의 위기가 고조된 요즘, 콘텐트의 파워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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