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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편리와 안락에는 독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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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기택
시인

교차로에서 푸른 신호만 보고 달리다 갑자기 오토바이가 코앞을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바람에 온몸에 소름이 돋은 적이 있다. 운전할 때 가장 무서운 것은 트럭이나 버스가 아니라 차선도 교통신호도 없는 오토바이다. 오토바이는 가끔 과속과 신호 위반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아찔하게 경고한다. 내겐 이보다 실전적인 안전운전교육이 없다.

 얼마 전에 한 피자배달원이 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배달원의 질주 뒤에는 ‘30분 배달시간제’가 있었다. 30분이 지켜준 따뜻하고 맛있는 온도 속에는 젊은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속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 배달원은 대학 입학을 2주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를 당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전 오늘부로 30분 배달 피자는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 소비자가 죽음을 대가로 한 상술에 저항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퀵서비스맨이 흘리고 가는 몸을 차들이 짓이기며 간다 몸은 잘 다져진다 길에서 살냄새가 난다”(이원, ‘퀵서비스맨’). 퀵서비스맨은 1∼2초만 늦어도 차에 짓이겨질 수 있는 잠재적인 죽음을 늘 겪는다. 그들은 “살을 내어주고 삶의 시간”을 얻는다. 도로 위에는 항상 “브레이크통에서 흘러내리다 멈춘 퀵서비스맨의 심장이 펄떡거린다 심장은 아직 붉다 물컹하다”.

 이 시의 퀵서비스맨은 경쟁의 속도에 내몰린 현대인의 모습을 닮았다. 일을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이 될 때가 있다. 속도가 마음을 옥죄어 너그러움을 빼앗고 불안하고 거칠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속도를 요구하는 것은 몸을 조금이라도 덜 움직이려는 사소한 편리와 안락인 경우가 많다. 몸과 머리와 마음을 덜 쓰게 하는 기술은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힘든 노동을 해야 겨우 얻을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온라인이나 전화 구매와 배달 서비스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한두 층을 오르는 데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걸을 만한 거리도 차를 타고, 조금만 더워도 창문을 여는 대신 에어컨을 켜는 사람들이 이들의 우수 고객일 것이다.

 “봄이 오면 제비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씀바귀가 자라면 입맛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중략) / 아기들은 산모 자궁까지 직접 배달해드리겠습니다/ 자신이 타인처럼 느껴진다면/ 언제든지 상품권으로 교환해드리겠습니다/ 꽁치를 구우면 꽁치 타는 냄새를/ 노을이 물들면 망둥이가 뛰노는 안면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장경린 시인은 ‘퀵서비스’에서 머리와 손발과 마음을 쓰지 않고도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상술을 재미있게 풍자했다. 산을 오르는 불편과 수고 없이 어떻게 산소를 흡수하고 노폐물을 내뿜는 허파와 근육의 힘찬 펌프질을 즐길 수 있으며, 생명의 냄새가 풍부한 바람을 온몸으로 마실 수 있겠는가.

 나도 편리한 것을 좋아해 점점 게을러지고 있다. 편리와 효율과 안락에는 독이 있다. 거기에 중독되는 사이에 속도는 더 빨라지고, 그 속도의 폭력으로 피자배달원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김기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