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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전문기자의 경제 돋보기]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분들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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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정수
전문기자

‘헛다리 짚고 있다(You may be barking up the wrong tree).’ 오늘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주장할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올 들어 물가가 겁나게 오르고 있다. 그래서 뭔가 대응책을 내놔야 한다고 모두가 얘기한다.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지난해부터 선제적 대응을 주장해 온 사람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금리는 경기가 좋아서 물가가 오를 때 동원하는 수단이다. 실제로 많은 해외 저명학자는 (중국과 인도를 염두에 두고) 아시아 신흥경제가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한 해 8~10%씩 성장하는 세계 굴지의 규모를 가진 경제다. 이 나라들이 덩치가 얼마나 크고 빨리 성장했으면 이번 중동 사태 이전에 이미 수 년째 원유뿐 아니라 모든 주요 국제원자재 값을 다 올려놓았겠는가?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금리 인상 논자들도 인정하듯 지금 국내 물가가 오르는 것은 국내 경기가 좋아서가 아니다. 중동 불안에 구제역, 날씨 탓이 크다. 대부분 나라 안팎의 공급 충격과 비용 급등 때문에 오르고 있다. 경기지표가 한두 달 좋은 징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경기는 지금 본격적으로 걸음을 내디뎌 볼까,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아야 하나 그 갈림길에서 어정쩡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안전한 분석일 것이다. 이럴 때 금리를 올리면 경기를 완전히 주저앉힐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최근의 물가가 금리를 올려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금리를 올려도 될 정도의 경기 상황도 아니다. 수입물가 때문에 국내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경기(수요)는 식게 돼 있다. 실질소득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어서 소비가 줄고, 장사가 안 돼서 투자가 덩달아 줄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물가 때문에 경기가 식고 어려워질 텐데 금리까지 올려 경기를 더 식혀 가계 살림과 기업 경영을 더 힘들게 해야 할까 싶다. 안 그래도 비정규직과 청년 근로자들이 내몰릴 텐데 당국까지 그 등을 더 떠밀어야 하나 싶다. 잘라 말해 이런 상황에서의 금리 인상은 자해행위인 것이다. 내 머리로는 고금리로 덕 볼 것은 금리로 먹고사는 업종과 사람뿐이다. 지금의 금리 인상은 아무리 경기가 꺾여도 일자리를 잃거나 월급이 깎일 염려가 없는 사람들이나 주장함 직하다.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방법을 달리 찾자는 게다. 공급 부족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것이라면 채소를 더 심든, 나라 창고를 더 풀든, 나라 밖에서 고기를 더 사들여 오든, 개방 폭을 늘리든, 어떻게든 공급을 늘려야 한다.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인한 비용 상승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것이라면 환율을 내리든, 세율을 줄이든, 공공요금을 동결하든 어떻게든 비용 폭등의 부담을 줄이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다 해보지도 않고 그 효험이 미처 발휘되기도 전에, 왜 댓바람에 금리를 올려 경기의 불씨를 꺼뜨리겠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공급 확대만으로는 물가를 잡기 힘드니 인플레 기대심리(계속 물가가 오를 것이니 나부터 살자며 너도나도 임금과 가격을 올리려는 심보)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수요억제책을 써야 한다는 사람도 많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확산돼 임금과 물가 간의 악순환이 야기되면 그 해악을 떨쳐버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거나 걱정하지 않는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금리 인상을 경계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금리 인상의 피해가 저소득층과 가계대출자, 비정규직 등 경제적 약자에게 집중되고, 둘째로 금리 인상 말고 다른 수요억제책을 제대로 써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간 수요를 덜 손상시키면서 나라 전체 수요를 줄이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공무원 보수 동결이든, 주요 건설사업 연기든 정부 지출을 줄이면 그만큼 가격 안정을 기할 수 있다. 사력을 다해 이런 노력을 해봤는데도 계속 물가가 오른다면, 그래서 달리 수단이 없다면 그때 금리 인상 처방을 꺼내도 될 것이다. 

김정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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