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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경영] 제 1화 멈추지 않는 자전거 54년 ⑭ 기형 아이들 위한 특수 젖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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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보령제약그룹 사회복지단체인 중보재단이 구순구개열 수술을 지원한 베트남 어린이 환자들의 퇴원을 축하해 주고 있다.


기업은 공식적으로 주주의 것이고 이익 창출이 목적이다. 그러나 제약기업의 경우는 예외다. 특정인의 소유이거나 이익만을 추구하면 자칫 아픈 이의 고통을 더는 본연의 임무를 다소 소홀히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약기업의 주인은 병든 자들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 크든 작든 누구나 병을 얻기 때문에 제약기업의 주인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병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나누고 더는 일이 목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제약기업이 벌이는 사업은 반드시 경영방침이나 단기 목표에 따라 설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너무 추상적이고 비기업적 사고를 가졌다고 할지는 몰라도 보령제약의 경우 때로는 아주 작은 목소리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기도 한다. 소아암을 앓다 일찍 세상을 떠난 소진이가 제대혈사업의 동기가 됐듯이.

 1992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는 아주 특별한 연하장을 받았다. 의정부에 사는 한 주부의 연하장이었는데, 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봉투 안에는 새해 인사를 담은 연하장과 함께 또 다른 편지 한 장이 있었다. “저는 의정부에 사는 윤혜 엄마입니다. 윤혜는 날 때부터 구순구개열 아이입니다. 이제 태어난 지 겨우 두 달이 됐는데 입 때문에 제 젖도, 분유 젖꼭지도 물지를 못합니다. 생활보호대상자로 근근이 사는 처지에 큰 수술비를 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먹지를 못하는 아이는 자꾸 말라 갑니다. 회장님, 좀 도와주십시오.”

구순열 아기를 위한 젖꼭지. 아이가 젖을 빨 때 윗입술을 막아주어 파열 부분을 통해 공기가 새는 것을 막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

 나는 당장 연구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그 주소를 알려 주고 크리스마스 쉬는 날 이후 가 보라고 일렀다. 그런데 그 직원이 말했다. “아닙니다, 당장 가 보겠습니다.” 그때가 오전 11시였는데, 그 직원은 오후 4시쯤 내 방으로 왔다. 직원이 보여 준 사진 한 장은 충격적이었다. 입술이 좌우로 갈라져 있었고 몸은 마른 가지처럼 말라 있었다. “구순열인가?” 내 질문에 직원이 대답했다. “구순구개열입니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입천장도 갈라져 있습니다.”

 구개열은 입천장이 갈라져 음식물이 코로 넘어오는데, 그래서 감기나 중이염에 쉽게 걸리며 발음이 정확하게 되지 않는다. 구순열은 입술이 좌우 또는 양측으로 갈라져 있는 증상으로 잇몸, 입천장 균열, 코의 변형이 동반된다. 이 두 상황이 겹치면 구개구순열인데, 입천장과 입술이 동시에 갈라져 있는 증상으로 가장 높은 발생 비율을 보인다. 이런 현상들은 얼굴에서 가장 흔한 선천성 기형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경우 약 650~1000명당 한 명꼴로 나타난다. 문제는 정확한 원인 파악이 안 되고 있는 것인데 다만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이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복합적 요인으로 보고 있다.

 의정부의 윤혜가 그랬듯이 구순구개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아기가 젖을 빨 때 윗입술과 입천장이 벌어져 젖을 빨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양분을 적절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하고 아기의 ‘빨기 본능’을 충족시켜야 했다. 그때부터 우리 연구소는 독일의 기술 제휴처인 NUK 제품을 기초로 특수 젖꼭지 연구에 들어갔다. 내 지시로 의정부에 갔다 온 그 직원도 열심히 참여해 밤낮 없이 연구한 결과 곧 성과가 나타났고, 임상 테스트도 거쳤다. 윤혜와 같은 아이들이 굶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옛날 그 어떤 사업을 할 때보다 마음이 바빴다.

 마침내 93년부터 보령메디앙스를 통해 입천장과 입술 부위가 파열된 아기들을 위한 특수 젖꼭지를 무료로 나눠 주기 시작했다. 구개구순열 수술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2001년까지 계속된 이 무료 공급사업을 통해 1만857개의 구개열 젖꼭지, 1358개의 구순열 젖꼭지를 전국 방방곡곡에 공급했다. 우리나라 구개구순열 환자의 30%가 보령 특수 젖꼭지의 혜택을 받았다.

 지난달 나는 또 특별한 편지를 받았다. 이번에는 ‘이윤혜’가 발신인이었다. 감사의 말을 전하는 편지와 함께 들어 있는 사진에는, 아주 예쁜 입술을 가진 건강한 여자아이가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장면이 담겨 있었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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