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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법 개정안 뭐가 문제냐” … 강기정 오히려 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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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일 서울북부지법 대법정에서 열린 청목회 입법로비사건 법정스케치. 최규식 의원의 변호인인 황정근 변호사가 일어나 의견서를 읽고 있다. 이날 의원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의원들은 컬러로 표시돼 있다. 앞줄 왼쪽부터 최규식·권경석·이명수 의원, 뒷줄 왼쪽부터 유정현·조진형·강기정 의원. [스케치=김회룡 기자]


법정에선 녹음기도, 동영상·사진 카메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펜과 종이만으로 재판 현장을 전할 수 있다. 본지는 중요 사건에 대해 법정 내의 공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라이브 법정’을 마련했다.

 9일 서울 도봉구의 서울북부지법 702호 대법정. 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로부터 법 개정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후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국회의원 6명에 대한 두 번째 재판이 열렸다. 지난 4일 국회의원이 단체 관련 자금을 후원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뒤 검찰과 의원들이 처음 마주 앉은 자리였다.

 양측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북부지검 관계자는 이날 오전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붙는다. 재판에 가 보면 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유정현 의원도 이날 법정으로 들어서기에 앞서 “이번 수사는 검찰의 보여 주기식 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개정안에 대한) 반대 여론은 언론에서 주도한 것으로 국민의 뜻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기자와 대화를 나누며 여유 있는 웃음을 짓기도 했다. 석 달 전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뒤 취재진을 피해 지하주차장으로 나갈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유 의원=검찰이 정치자금법과 관련해 수사하고 있는 사안이 27건이다. 지금의 법은 검찰에 너무 많은 재량권을 주는 것이다.

 ▶기자=개정안을 통과시킨 방식에는 문제가 있지 않나.

 ▶유 의원=과정을 들여다보면 기습 처리가 아니다. 1심 판결 이후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그전에 재판받은 의원들은 억울하지 않겠나.

 오후 2시 북부지법 형사11부 심리로 재판이 시작됐다. 의원들은 두 줄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한나라당 권경석·유정현·조진형 의원, 민주당 강기정·최규식 의원,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이 각각 변호인들과 함께 자리했다. 의원들은 착잡한 얼굴로 재판을 지켜봤다. 자신의 혐의에 관한 공방이 벌어질 때는 메모하기도 했다. 변호인들은 “후원금이 들어온 사실을 몰랐다” “청목회의 돈인 줄 알지 못했다”며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황정근(최규식 의원 변호인) 변호사=정치자금은 나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비용이다. 이번 기소는 다수의 소액 후원금을 장려하는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고 국회의원의 순수한 입법 활동을 폄하하고 있다.

 ▶이선애(이명수 의원 변호인) 변호사=청원경찰법 개정은 국회의원 선거 당시의 공약을 지킨 것이다. 

 이에 검찰이 바로 맞대응을 했다. 한태화 검사는 “청목회는 돈을 보낸 직후 후원 사실을 알리거나 팩스로 명단을 보내 줬다”며 “후원회 여직원이 이명수 의원에게 입금 사실을 보고했다는 문건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나갈 무렵, 양측은 증거 채택을 두고 한 치의 양보 없는 설전을 벌였다. 검찰이 청목회 간부들의 법정 진술과 청목회 카페에 게시된 글 내용, 검찰의 계좌 추적 내역 등을 증거로 제출하자 변호인들은 일제히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차유경(권경석 의원 변호인) 변호사=(흥분한 목소리로) 권 의원이 2000만원을 받은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권 의원은 청목회의 돈인 줄 몰랐다. 검찰이 청목회 내부의 자금 조성 경위를 증거로 제시한 이유를 모르겠다.

 ▶박홍규 검사=(수사 기록을 거칠게 넘기며) 변호인 측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후원금을 준 청목회 측은 이 돈이 단체의 자금이고 청탁을 대가로 건넨 돈임을 인정했다. 이걸 다 부인하는 취지가 대체 뭔가. 

  양측의 날 선 공방이 20분 가까이 계속되자 결국 재판장인 강을환 부장판사가 나섰다. 강 부장판사는 “증거를 통째로 인정하지 않으면 재판 진행이 어렵다”며 “증인 신문은 다음 재판부터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정리했다.

 재판 후 강기정 의원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대해 “오비이락(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다. 진작에 바꿔야 될 것을 이제 바꾼 건데 뭐가 문제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이명수 의원도 “개정안이 면죄부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은 참 편하다. (수사에) 걸리면 법을 바꾸면 되니까”라고 말했다.

글=이한길·정원엽 기자
스케치=김회룡 기자

◆정치자금법 개정안=지난 4일 국회 행안위에서 통과시킨 개정안의 골자는 단체의 정치자금 후원을 일부 허용하고 국회의원이 본인의 입법 활동과 관련해 정치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법사위와 본회의 처리 절차를 남겨 두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처벌 근거가 사라져 정치자금법 위반사건 수사가 대부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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