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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처벌강화 급한데 … 법원 “형벌과중” 발목 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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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해 4월. 청주의 한 ‘키스방’ 업소. A양 등 14세 소녀 세 명이 김모(39)씨 앞에서 면접을 보고 있었다.

 “너도 미성년자 맞지? 지금부터 이 주민등록번호 외워.”

 김씨가 건넨 주민등록증은 ‘22세 김OO’의 것이었다. 그날부터 소녀들은 30분에 2만원씩 받고 남자 손님들을 맞았다. 성관계를 한 경우도 있었다. 단속에 적발된 김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동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A양을 강제로 추행한 혐의도 추가됐다. 김씨는 1심에서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에 대한 재판을 중단하고 그를 석방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9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대전고법 청주제1형사부는 김씨에게 적용된 아동성보호법 12조 1항에 대해 “지나치게 과중한 형벌이어서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해당 조항은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알선하는 업자를 7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당초 ‘징역 5년 이상’이었으나 지난해 3월 법 개정으로 상향됐다. 법원이 지난해 2월 김길태 사건 이후 이뤄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처벌 강화 입법에 대해 잇따라 위헌제청을 함에 따라 논란이 예상된다.

 재판부는 “해당 법 조항은 법관이 전과 유무, 범행 동기, 영업 기간 등을 고려할 여지도 없이 집행유예조차 선고할 수 없게 함으로써 법관의 양형(형량 결정)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김씨 사건의 경우 “영업 기간이 1주일 정도에 불과하고 실제 성관계까지 나아간 것은 단 1회였으며 김씨가 청소년들에게 성관계를 강요한 사정도 엿보이지 않는다”며 “집행유예나 단기 징역형을 선고해야 할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법정 형량이 징역 7년 이상인 경우 작량감경을 하더라도 징역 3년6월 이상이어서 징역 3년 이하에 대해서만 가능한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다.

 앞서 지난해 8월 청주지법 충주지원은 출소를 앞둔 아동 성폭행범 등에게 소급해 전자발찌를 부착하게 한 특정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 부칙 2조1항에 대해 “사실상 형벌을 이중으로 부과하는 것”이라며 위헌제청을 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예방 차원에서 아동·청소년 성범죄 사범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입법 취지는 물론 일반인의 법 감정과도 어긋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권석천 기자

◆위헌제청=법원이 직권 또는 재판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법률이 위헌인지 여부를 헌재에서 결정해 달라고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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