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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석의 Wine&] 영화 같은 사연 담긴 프랑스풍 스페인 와인 ‘장 레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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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최근 국내에서 스페인 와인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통관된 와인 중 스페인산은 칠레산에 이어 둘째로 많았다. 올해 한-유럽 FTA까지 발효되면 더 많은 스페인 와인이 쏟아질 전망이다. 지난달 25일 스페인 와인의 대표 주자인 토레스(Torres)의 오너 미리에 토레스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창업주 미겔 토레스의 딸인 그는 “스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포도밭을 가지고 있는 나라로 그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며 “한국은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시장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가 이날 선보인 와인은 장 레옹(Jean Leon·사진). 토레스 가문이 소유하고 있지만 그 이름은 물론 맛에서도 토레스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은 와인이다. 미리에 토레스는 “장 레옹은 철저하게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로 만들어진다”며 “우리가 장 레옹을 만들게 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장 레옹은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간 스페인 출신 이민자였다. 원래 이름은 세페리노 카리온(Ceferino Carrion)이었지만 미국에서 프랑스인으로 대접받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뉴욕의 한 식당에서 일당 4달러의 접시닦이로 미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수려한 용모와 타고난 화술로 곧 웨이터가 됐다. 이때 그를 눈여겨본 사람이 당대 최고의 가수이자 배우였던 프랭크 시내트라였다. 그는 레옹을 자신이 할리우드에서 운영하던 레스토랑 빌라 카프리로 데려갔다. 레옹은 시내트라를 통해 할리우드 배우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그중 한 명이 제임스 딘이었다. 레옹은 딘과 함께 ‘라 스칼라’라는 레스토랑을 공동 개업하기로 했다. 하지만 레스토랑 오픈 2주를 앞두고 제임스 딘은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 레옹 혼자서 연 라 스칼라는 순식간에 할리우드의 아이콘이 됐다. 단골 고객 메릴린 먼로의 경우 몸이 안 좋은 날엔 라 스칼라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먼로는 죽기 전날에도 라 스칼라에서 음식을 주문했고, 장 레옹은 먼로의 생전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됐다.

 라 스칼라는 음식과 서비스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바로 와인이었다. 레옹은 고국인 스페인의 와인을 레스토랑에 들이고 싶었지만 자신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와인이 없었다. 결국 그는 스페인에 건너가 직접 포도밭을 사서 와인을 만들었다. 바로 장 레옹 와인이다. 당시 그는 스페인 토종 품종을 파헤치고 국제 품종들을 옮겨 심으며 현지 포도밭 주인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때 그를 도와준 사람이 미겔 토레스였다. 둘은 곧 친구가 됐고, 나아가 스페인 와인의 고급화와 세계화를 이끈 주역이 됐다.

 90년대 중반 암에 걸린 장 레옹은 친구인 미겔 토레스를 찾아가 “내 양조장을 맡을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며 “지금 나와 당신이 만드는 것처럼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요트에 와인을 가득 싣고 2년 동안 바다 위를 떠돌며 마지막 인생을 즐겼다. 최근엔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도 나왔다.

손용석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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