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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혁명동지 카다피를 버렸다 … 그의 눈물이 안보리를 움직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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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

무함마드 샬람 유엔 주재 리비아 대사. 그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와 10대부터 교분을 쌓아온 혁명 동지이자 외무장관까지 지낸 정권 실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개 회원국 대표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샬람의 연설 스타일에도 익숙하다. 대사로 일한 2년간 그는 늘 안경을 쓰고 미리 준비한 원고를 두 손으로 잡은 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오후(현지시간) 안보리 회의장에서 보여준 샬람의 모습은 크게 달랐다.

 그에겐 원고가 없었고, 그래서 안경도 필요하지 않았다. “거리의 시민들은 자유와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돌멩이 하나 던지지 않고 평화적 시위를 벌였는데도 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샬람은 주먹으로 책상을 치고, 손가락을 흔들며 안타까운 조국의 현실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그는 히틀러와 폴포트(크메르 루주 학살 장본인)의 사례까지 들며 “카다피는 자신의 통치 아니면 죽음뿐이라고 하지만, 노예 제도와 일인 통치는 이제 끝났다”고 선언했다.

리비아의 무함마드 샬람 유엔 주재 대사(왼쪽)와 이브라힘 다바시 부대사가 25일 유엔 안보리 회의가 끝난 뒤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욕 AP=연합뉴스]

이어 카다피와 국제사회를 향한 절박한 호소가 이어졌다. “내 형제 카다피에게 말합니다. 부디 이제 리비아를 내버려두고, 스스로 떠나 주세요.” “유엔이여, 부디 리비아를 살려주십시오. 무고한 시민들이 한 명도 죽지 않게,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 안에 용기 있는 행동에 나서 주십시오.”

6분간의 연설을 마친 샬람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슬픔과 회한이 가득했다. 불과 나흘 전 카다피와의 의리로 “그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공격할 수는 없다”고 했던 그였다. 샬람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반(反) 카다피 선언을 한 뒤 사퇴했던 이브라힘 다바시 유엔 주재 리비아 부대사가 다가와 부둥켜안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어 안보리 회원국 대표들이 돌아가며 샬람과 포옹하며 그의 용기를 격려했다. 그 속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있었다.

 유엔 안보리는 다음 날 리비아 제재 결의를 회원국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제재 동참에 머뭇거리던 중국도 찬성표를 던졌다. 반기문 총장은 “샬람의 연설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세계 주요 언론은 리비아 외교관들의 눈물이 조국 리비아를 위한 눈물이었다고 평가했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