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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에 울고 … 설탕에 웃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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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8일 서울 중구 쌍림동 CJ제일제당 소재사업부문 사무실의 모습. 벽면 중앙에 위기감을 강조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국제 곡물가 인상이 국내 식품업계 구도를 흔들고 있다. 국제 곡물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소재업체들의 영업이익은 크게 줄어든 반면 이들 소재업체에서 밀가루와 설탕 등을 납품받는 가공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경영 실적을 거두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업계에선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현재 ‘CJ제일제당-농심-삼양사-오뚜기-동서식품’ 순(매출 기준)인 식품업계 랭킹에도 변화가 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3일 본지가 주요 식품업체의 공시 내용을 분석한 결과 식품업계 1위 기업인 CJ제일제당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077억원(영업이익률 5.2%)으로 2009년보다 20.7% 줄어들었다. 소재업체인 삼양사와 대한제당도 각각 영업이익이 40.5%, 62.99% 감소했다. 반면 이들 소재업체가 만든 제품을 납품받는 롯데제과(34.7%), 대상(35.4%), 롯데칠성음료(28.3%) 등은 영업이익이 대폭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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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을 가른 주된 요인은 가격 인상 여부다. 가공업체는 원가 인상 등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지난해 수차례 올린 반면 소재업체는 정부의 물가억제 정책의 타깃이 되면서 곡물가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공업체의 경우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어 제품가 인상 요인을 다양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작용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영업이익은 실질적으로 ‘기업이 얼마나 잘했는가’를 나타내는 가장 정확한 지표인 동시에 연구개발(R&D)과 신사업을 위한 투자의 원천이 된다”며 “소재업체들 사이에서 가공업체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의 경우 올 상반기 설탕사업 부문에서만 500억원가량의 적자가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소재업체들의 단기 전망도 밝지 않다.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이달 초 “CJ제일제당은 제품 원재료인 원당과 밀 가격이 연간 기준으로 각각 50%, 58% 급등해 올해 매출총이익(매출액에서 매출원가를 제외한 금액)이 13%까지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으로 올해 1분기까지는 제품 값을 올리기 어려운 만큼 힘든 영업환경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재업체들은 비상경영체제=CJ제일제당 소재사업본부 사무실에는 최근 “비상경영으로 비상(飛翔)하자”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국내외 원자재 시장 움직임에 실시간 대처하기 위해 출근시간도 오전 7시30분으로 한 시간 앞당겼다. 주말에도 팀장급 이상 전원이 출근하고 있다. 제품할인 행사도 최소화하고 소모성 사무용품 사용도 자제하란 지시가 떨어졌다. 삼양사 식품소재사업본부도 최근 경영환경을 ‘식품소재사업 최대의 위기상황’으로 규정하고 ‘곡물가 비상대책회의’를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위기경영프로젝트팀을 발족해 식품소재사업(설탕·밀가루·유지) 생존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설탕 등 사업구조의 전면 개편을 검토 중이다. 대한제당이나 동아원 등 다른 소재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가공업체는 상황 주시=가공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다. 최근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이 소재산업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탕·밀가루 등 소재 가격이 머잖아 인상될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한 제과회사 관계자는 “업체마다 원재료 가격 인상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구하고 밀가루 재고분을 쌓기 시작하는 등 대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 중인 SPC그룹은 냉동 생크림 등 원자재의 해외 거래망을 늘려가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중국에 몰려 있던 농산물 거래처를 동남아 등으로 다변화 중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소재업체들이 국제 곡물가 변동의 충격을 걸러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가공업체들은 조금 여유를 갖고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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