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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이유 12 라이카 카메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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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낸 사진작가로 도 유명하다. 한가람미술관에서 27일까지 열리는 ‘델피르와 친구들’ 전시에서 만난 브레송(그는 델피르의 절친한 친구였다)의 사진을 예로 들면 이렇다.

사진에서 한 남자는 파리 생 라자르 역 뒷문 부근에 있는 물웅덩이를 뛰어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은 ‘생 라자르 역 뒤에서’다. 폴짝 뛰어오른 남자의 모습은 그 뒤로 보이는 담벼락의 포스터 속 댄서들과 비슷해 보인다. 1000분의 1초를 잡아낸 결정적 순간이다. 이때 브레송이 사용한 카메라가 바로 ‘라이카’다.

브레송이 쓴 라이카는 카메라 역사상 가장 사랑받았다고 알려진 M시리즈의 첫 모델인 라이카 M3다. 이 제품이 시판되기 시작한 것은 1954년이다. 물론 라이카가 나오기 전에도 소형카메라는 있었다. 1925년에 출시된 소형카메라 엘마녹스는 사물을 순간적으로 포착할 수 있어 사진표현에 변화를 일으켰다.

소형카메라 시초가 엘마녹스라면 대표는 라이카라 할 수 있다. 라이카는 영화촬영에 쓰이던 롤필름 35㎜를 처음 카메라에 사용했고, 조리개를 밝게 만들어 빛이 부족한 곳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다. 또한 롤필름 사용으로 연속 촬영도 가능해졌다. 그뿐 아니라 렌즈를 탈·부착 할 수 있게 하고 카메라의 뷰파인더라는 포맷을 만든 것도 라이카다. 그 이후로 라이카의 기능과 규격은 별반 달라진 것이없다. 소형카메라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그때 갖췄다.

라이카는 작고 조용하며 민첩하다. 카메라 내부에 반사경(미러)이 없어 찍을 때 ‘찰칵’하는 소리를 내는 일반 카메라에 비해 조용하고 진동이 적다. ‘펑’하는 플래시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던 시절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라이카 매니어들은 ‘정숙한 셔터 소리’라고도 한다.

크기가 작아 언제 어디서든 휴대가 가능한 점도 그 당시엔 획기적이었다. 거리계와 뷰파인더를 하나의 창으로 통합한 거리계연동(레인지 파인더)식이어서 등배 파인더를 통해 두 눈을 뜬 상태에서도 촬영이 가능한 점도 결정적 순간을 잡는 데 한몫 했다. 물웅덩이를 뛰어넘는 순간을 포착한 브레송의 사진처럼 말이다. 이렇듯 텍스트와 그림이 전부이다시피하던 19세기에 생활의 미학이 그대로 담긴 일상의 사진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상의 미학만이 아니다. 라이카는 기동성과 현장성이 중요한 보도사진에도 사용됐다. 전쟁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로퍼트 카파의 르포 사진, 일상을 예술사진으로 만들어내 현장예술가로 불렸던 브레송의 사진, 미지의 세계였던 인도네시아 모습을 라이카에 담아낸 로베르 델피르의 사진, 그리고 일상 속의 르포르타주를 시도한 앙드레 케르테츠의 사진이 그렇다. 라이카로 속사 촬영한 스냅사진이 쏟아졌던 시대다.

소형카메라 중에 왜 굳이 라이카냐고 묻는다면 “완성도가 가장 높은 카메라이기 때문”이라는 게 라이카 매니어인 전우현씨의 설명이다. 라이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그 성능을 인정받았다. 여기저기서 폭발물이 터지고 심한 외부충격을 견뎌야 하는 등 최악의 환경인 전쟁터에서도 오작동 없이 튼튼했다. 금속 중에서도 튼튼하고 열 변형이 거의 없는 황동을 덩어리째 깎는 절삭가공으로 만든 것이 라이카다. 보통 금속을 자르고 접어 만드는 다른 카메라와 다른 점이다.

황동을 통째로 쓰기 때문에 변형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뷰파인더와 렌즈의 주재료인 유리와 황동만으로 카메라를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카메라는 사막에서 남극까지, 극한의 온도에서도 작동한다. 57년 전에 등장한 M3가 지금도 제값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라이카의 견고함과 그 기능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중고도 없어 못 살 정도고, 중고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1000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그 인기를 실감할 만하다.

[사진설명] 1. 브레송을 비롯해 당시 사진작가들이 즐겨 썼던 라이카 M3. 2.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생라자르역 뒤에서’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반도카메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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