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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앙금’ 정몽구·현정은, 현대건설 인수 전쟁 끝났으니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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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09년 12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 환영 오찬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왼쪽)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오른쪽). [중앙포토]


시아주버니(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가 제수씨(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장 화해가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 당분간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 같다. 두 사람을 이어줄 화해 특사도 필요하다. 특사는 현대차그룹 경영진이 아닌 외부의 명망 있는 인사가 맡을 가능성이 크다. 현정은 회장이 정·관계, 재계에 아는 인사들이 많아 이중 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사의 보따리엔 우선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7.8%)을 현대상선에 넘긴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재경본부는 ‘얼마를 받고 어떻게 지분을 넘길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간단치 않다. 현대건설·현대상선 모두 상장사다. 아무리 친·인척간 화해를 위한다지만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결정은 할 수 없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상선의 주식가치를 현대건설 주주·현대그룹이 납득할 만한 선으로 계산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은 두 그룹 간 반목의 원인이자, 화해의 열쇠이기도 하다. 현대상선, 나아가 현대그룹 경영권의 향방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경영권 방어는 현 회장 취임 때부터 발등의 불이었다. 2003년 회장 취임 당시 현대상선의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놓고 범현대가인 KCC와 분쟁이 벌어졌다. 2006년에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위협했다. 현 회장은 당시 여론의 도움을 받는 등 가까스로 우호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지켰다. 현재 현 회장의 현대상선 지분(우호지분포함)은 약 40%. 반면 현대중공업과 KCC 등 ‘범현대가’는 31.5%를 보유 하고 있다. 범현대가에 현대건설이 넘어가면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7.8%도 따라간다. 범현대가의 지분율도 순식간에 40%에 육박한다. 현 회장이 현대상선 경영권을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가져가면 현대상선 지분을 50%가량 확보해 더 이상 경영권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현대건설을 놓고 제수와 시아주버니가 치열한 경쟁을 벌인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문제는 화해를 주선하고 엮을 적임자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럴 때 정몽구 회장의 부인 고 이정화 여사가 계셨다면 문제 풀이가 한결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화 여사는 2009년 10월 타계했다. 퇴직한 정 회장의 측근은 “이 여사는 현대가 정씨 일가의 맏며느리로서 동서들과 함께 집안 대소사를 이끌면서 현 회장과도 가깝게 지냈다”며 “이 여사만 살아계셨어도 현대건설을 놓고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 인수전의 두 주역 간 소통이 어려운 것도 문제다. 현대차그룹에선 김용환(54) 기획총괄 부회장이 지휘했다. 그는 옛 현대그룹 시절 현대정공에 입사해 20여 년간 해외에서 근무했다. 현대그룹 핵심 경영진과는 별로 안면이 없다. 현대그룹의 하종선(57) 전략기획본부 사장도 마찬가지다. 하 사장은 한국·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법리해석 전문가다. 역시 현재 현대차그룹 경영진과 터놓고 얘기할 만한 상대가 별로 없다. 인수전을 지휘한 두 핵심 경영진의 소통 부재가 두 그룹 간 갈등의 골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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