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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한심한 스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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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직후 독일 정보기관이 베를린에서 네덜란드 국적의 미녀를 포섭했다. 파리의 물랭루주 댄서 출신인 38세의 이혼녀였다. 그녀에게 적군 고위 장교들에게 접근해 기밀을 빼내 오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외모·두뇌·화술 등 스파이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춘 그녀를 프랑스 정보요원들도 눈여겨봤다. 적의 세작(細作)인 줄 모르던 그들도 그녀에게 독일군 첩보를 훔쳐오라고 했다. 이중간첩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얼마 뒤 독일 정보국은 이런 냄새를 맡고 프랑스 측에 그녀가 독일 스파이라는 사실을 암호로 흘렸다. 결국 그녀는 파리에서 체포돼 반역죄로 1917년 10월 15일 총살형을 당했다. 41세였다. 말레이어로 ‘새벽의 눈동자’를 뜻하는 ‘마타하리(Mata Hari)’ 얘기다. 네덜란드 장교였던 남편을 따라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산 적이 있어 이런 이름을 썼다고 한다. 본명은 마그레타 G 젤러였다.

 희대의 스파이 사건만큼 흥미진진한 얘기도 드물다. 삶이 영화나 소설보다 더 극적이기 때문이다. 첩보계에선 리하르트 조르게란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2차 대전 발발 직전에 잡혔지만 연합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한 소련 스파이다. 그는 1930~1933년 상하이에서 활동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10월 체포될 때까지 9년간 암약했다. 주일 독일대사와 친분을 쌓은 뒤 독일의 소련 침공작전에 관한 정보를 빼내며 맹활약했다. 같이 일했던 일본 공산당원의 배신으로 1941년 10월 검거돼 3년 뒤 49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스파이라고 잡히면 다 죽는 건 아니다. 러시아 미녀 안나 채프먼은 19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남자와 결혼한 뒤 미국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다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동료 9명과 함께 풀려났다. 미국이 자국을 위해 활동한 러시아인 스파이 4명과 맞교환한 것이다. 러시아로 돌아온 28세의 채프먼은 국가최고훈장을 받으며 일약 영웅이 됐다.

 오늘날 민주 국가에선 개인의 사생활을 캐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쟁사의 정보를 훔치는 산업스파이도 중범죄로 다스린다. 하지만 국가 간 정보 전쟁은 예외다. 다들 국익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소속으로 추정되는 3명이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였던 롯데호텔에 잠입한 사건으로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이들을 과연 스파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스파이 수준이 이 정도라면 창피할 뿐이다.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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