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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저축은행 위기 부추긴 5000만원 예금보장 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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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21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저축은행중앙회는 하루 종일 걸려오는 전화로 어수선했다. 불안해하는 예금자들에게 중앙회 직원들은 5000만원까지 원금과 이자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구슬땀을 흘렸다.

 5000만원 예금 보장 제도는 금융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강력한 방어 수단이다. 공기업인 예금보험공사가 원리금을 보장해 주는 제도가 없었다면 아마 이번 사태로 진작 대부분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5000만원 보장은 양날의 칼이다. 되레 저축은행 위기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한도가 지나치게 높다. 현재 예금 보장 한도는 은행·저축은행·보험·증권 모두 같다. 자산 규모 200조원이 넘는 시중 대형은행과 500억∼600억원에 불과한 지방 중소 저축은행의 예금 보장 한도가 똑같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저축은행 업계는 사고에 대비한 보험료를 더 부담하고 있으니 이상할 게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부실 저축은행들이 속속 넘어지면서 예보기금의 저축은행 계정은 2조 8000억원이나 펑크가 나 있다. 이만큼의 돈을 은행·보험사에서 빌려 썼다. 반면 은행 계정에는 4조 5000억원이란 돈이 쌓여 있다.

 높은 예금 보장 한도는 또 저축은행과 예금주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 저축은행들은 고금리 특판 예금을 남발했다. 그리고 그렇게 끌어들인 돈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쏟아부었다. 높은 금리를 주고 돈을 끌어들였으니 위험이 크더라도 고수익이 기대되는 곳에 돈을 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액 자산가들도 높은 예금 보장 한도를 활용했다. 거액의 돈을 맡기면서 예금 보장을 받기 위해 가족들 명의를 빌려 나눠 넣는 일이 많았다. 한때 예보가 이런 편법을 막으려고 동일 통장, 동일 비밀번호를 사용하면 동일인으로 간주해 예금 보장을 거부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러나 2009년 대법원은 전액 보장해 주라고 판결했다. 국민 세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예금 보장 제도가 부유층의 변칙 재테크 수단으로 사용된 셈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21일 부산에서 “지금은 (예금 보장 한도) 그런 얘기를 꺼낼 때가 아니다. 평시에나 얘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하루빨리 고칠 건 고쳐야 한다. 그게 저축은행 사태의 재발을 막는 길이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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