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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로 풀어본 인도네시아 특사 숙소 침입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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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가정보원 직원의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잠입과 관련해 조현오 경찰청장은 “그렇게 밝혀졌을 경우 (해당 직원들을) 처벌해도 실익이 없지 않나”고 말했다. 21일 출입기자와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국익을 위해서 한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정원의 어설픈 사태 수습과 이 과정에서 불거진 정부의 미숙한 처리과정은 오히려 국익을 손상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건 발생 및 수사 상황을 이번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서범규 서울 남대문경찰서장과 신성철 형사과장, 과학수사팀 소속 직원들의 설명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사건의 전말과 국정원 관련 사실이 불거진 계기 등을 Q&A 형식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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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16일 오전 9시27분 1961호선 무슨 일이

남자 2 여자 1명 침입 … 바로 위층엔 국정원 사무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1961호에 묵고 있던 인도네시아 특사단 일행 중 한 명인 A씨는 16일 오전 9시27분쯤 자신의 방에 들어서다 깜짝 놀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자신의 노트북을 만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A씨가 놀라 멈칫하는 순간 이들은 곧바로 방을 나갔고, A씨는 방에 있던 두 대의 노트북 중 한 대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됐다. A씨가 호텔 종업원을 불러 “내 방에 무슨 일이 있나”며 항의를 했고, 이 종업원은 “알아보겠다”며 다시 방을 나갔다. 2~3분 뒤 A씨의 방에 있었던 남자 두 명이 다시 와 노트북을 돌려준 뒤 사라졌다. 함께 있었던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호텔 종업원은 이들 세 명이 직원들이 다니는 통로에 숨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당시 복도에는 객실 청소를 하는 직원들도 있었으며, 이들도 국정원 직원들이 숨어 있는 것을 목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들이 바로 위층인 20층에 있는 국정원 사무실로 곧바로 올라가지 않고 5분가량을 복도에서 머문 이유는 의문이다.

Q2 13시간 만에 경찰 신고 누가 했나

인도네시아 측 부탁 받고 한국 무관이 신고

16일 밤 11시15분 112를 통해 도난신고가 접수됐다. 곧바로 강력팀과 과학수사팀이 출동해 40분가량 현장 감식을 했다.

노트북 두 대에서 8개의 지문을 발견했다. 나중에 이 지문들과 대조를 하기 위해 특사단 일행 두 명의 지문 두 개를 추가로 채취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다.

최종 결과는 이번 주말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112 신고는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에 파견된 국방부 소속의 문모 대령이 했다. 문 대령은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을 인천공항으로 배웅하고 주한 인도네시아 무관과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던 중 “호텔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신고를 대신해줬다.

경찰은 이를 잘못 이해하고 국방부 의전담당이 신고를 한 것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신고가 13시간여 만에 이뤄진 것을 놓고 국정원 측이 시도한 사태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Q3 CCTV 화질 선명한데 얼굴 못 잡았나

여러 방향에서 찍혀 신상 파악 충분히 가능

서범규 남대문경찰서장

복도에 설치된 CCTV는 2004년에 생산된 일본 브랜드로, 한 쪽 방향만 촬영이 가능하다.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화질 상태가 나쁘지 않지만 조명 상태가 어두울 경우 식별이 어려울 수도 있다. 호텔 복도 양쪽 끝에 설치된 CCTV와 당시 국정원 직원들과의 거리가 10m 정도여서 얼굴이 작게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여러 방향에서 얼굴이 찍힌 데다 엘리베이터 내 CCTV의 경우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얼굴을 일부러 가리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신상 파악이 가능하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사건 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9층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등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경찰 수사가 계속되면서 국정원 직원들의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큰 데다 외교가와 호텔업계 등에서 소문이 번지면서 국정원 관련설이 불거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국정원 내부의 암투설이 국정원 개입설을 흘리게 된 계기가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Q4 국정원은 “절대 사실 아니다” 부인하는데

국정원 직원, 남대문경찰서 찾아가 보안 요구

청와대·국방부·외교부 어느 한 곳도 제대로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청와대 김희정 대변인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고, 다른 관계자들도 “모르는 얘기”라는 반응이다. 정부 부처인 국방부·외교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인은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시인도 부인도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입장인 셈이다. 오로지 국정원만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본지에 이런 솔직한 언급을 했다. “이런 사안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 해도 아니라 하겠나, 사실이라 해서 사실이라 하겠나. 이런 일이 벌어지면 세계 정보기관이 공통적으로 이렇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한편 신고 접수 4시간여 만인 17일 새벽 3시45분쯤 국정원 직원 한 명이 남대문경찰서를 찾았다. 이 직원은 야간 상황실장으로 근무 중이었던 여성청소년 계장 등을 만나 ‘수사 보안’을 요구했다. 당시 국정원 직원은 “인도네시아 특사단과 관련된 일이고, 외교적 문제도 있으니 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지혜·김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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