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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들, 취업 뚫기 전 도서관 뚫기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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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5일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 모 기업체에 취직한 정모(25·숙명여대)씨는 취업 전 친구에게 ‘은밀한 부탁’을 했다. “스마트폰으로 학생증에 새겨진 바코드를 찍어 전송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학교 도서관 출입을 위해서였다. 정씨는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장시간 도서관에 머물러야 했다. 그런데 학교가 1인당 열람실 이용을 최대 6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어 벌어진 일이었다. 정씨가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전송받은 친구의 학생증 바코드를 도서관 출입 검색대에 갖다 대자 바로 출입 승인이 떨어졌다.

 졸업 후에도 대학 도서관을 이용하려는 대학생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취업 준비나 고시 공부를 하는 졸업생과 4학년 학생들에게 대학 도서관은 공부할 곳과 도서 대출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해 주는 편의시설이어서다. 졸업 후 규정대로 대학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예치금(평균 3만~10만원)이나 동문회비(평균 10만~30만원)를 내고 출입 인증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취업 준비생들에겐 적잖은 부담이다. 각종 편법이 속속 등장하는 이유다.

 어학연수를 가거나 휴학한 후배·친구의 학생증을 빌려 도서관을 이용하는 ‘편법’은 이미 고전적 수법이다. 현재 대부분의 서울시내 대학들은 학생증 바코드나 전자칩을 쓰는 무인 출입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 열풍에 맞춰 서울대·서강대·성균관대·숙명여대 등은 모바일 학생증도 발급했다. 지난해 8월 서강대를 졸업한 장모(25)씨는 “최근 모바일 학생증이 나온 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방법을 주로 쓰는 추세”라며 “4년 넘게 비싼 등록금을 냈는데 도서관을 이용한다고 해서 학교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까지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1년 전 고려대를 졸업한 김모(28)씨는 취업 전 플라스틱으로 된 친구의 학생증을 종이에 복사해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씨는 “복사된 바코드를 도서관 출입대에 찍으면 열람실에 들어갈 수 있다”며 “다른 학교 친구들과 함께 취업 스터디를 하려는 학생들이 도서관에 들어갈 때 이런 방법이 유행했다”고 털어놨다.

 학생들의 기법만큼이나 대학 측의 방어책도 발전하고 있다. 고려대 도서관 관계자는 “바코드를 복사해 학생들의 이용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해 2년 전부터 학생증에 바코드 대신 복사가 불가능한 전자칩을 심어 출입 인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졸업생들의 도서관 이용 수요가 커지자 일부 국립대에선 졸업 후 1년까지 도서관 무료 출입·도서 대출을 허용해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대학은 여전히 도서관뿐 아니라 빈 강의실 사용도 등록금을 납부한 재학생에게만 ‘건물사용신청서’를 받아 허가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김종서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은 “학교 입장에선 졸업생 수요를 다 수용하기 어렵다”며 “취업·고시 준비생을 위해 공공도서관 활용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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