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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설(世說)

국가위기에 할 말이 따로 있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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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과 교수

한나라당의 정운천 구제역대책특위 위원장이 최근 “농사를 20년 지어봐서 나름대로 잘 안다”며 “구제역 침출수를 잘 활용하면 퇴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환경단체는 침출수에 대한 과학적 조사가 먼저인 상황에서 ‘침출수=퇴비’라는 주장은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결과라며 반발했다.

 지난달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정회의에서 “경찰이 백날 도둑을 지키면 뭐하나? 집주인이 도둑 잡을 마음이 없다”고 발언했다. 논란이 일자 윤 장관은 “추후 보상 시스템의 보완 필요성을 지적하려는 취지였다”며 “축산 농민에게 마음의 상처를 드린 점 깊이 사과 드린다”고 해명했다. 구제역 수습의 주무장관인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은 “매뉴얼대로 했는데, 매뉴얼에 문제가 있었다”고 과거 매뉴얼을 탓했다.

 구제역 파동이 장기화하고 살처분 가축이 300만 마리를 넘어서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전례가 없는 위기다 보니 수습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위 당국자들이 불필요하고 무책임한 발언을 함으로써 위기 수습에 차질을 빚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위기대응 커뮤니케이션 원칙의 하나가 ‘잡음(Noise)’ 방지다. 대외 발표의 창구를 일원화하고, 부득이 여럿을 둘 때는 사전 조율을 거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핵심이다.

 말은 할 때가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언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반향이 크게 다르다. 침출수 발언을 한다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와 검토가 가능한 환경 전문가,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가 하는 것이 적절하다. 축산농가의 책임 문제는 사태 수습이 일단락되고 구제역 위기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단계에서 나와야 할 이야기다. 매뉴얼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책임 있는 당국자가 할 말이 아니다. 매뉴얼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다양한 위기 상황에 적용될 수 있도록 손질하는 노력을 평소 게을리했다는 방증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수습의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하고, 위기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차제에 국가위기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과 교수